패션위크를 맞은 1월의 파리는 오트 쿠튀르 패션쇼로 끓어오른다. 패션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파리만의 ‘오트 쿠튀르’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호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바로크 풍 객실과 칼 라거펠트의 시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우아함을 담은 객실, 그리고 마치 샹탈 토마스의 란제리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객실까지,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꾸민 독특한 다섯 호텔을 살펴보자.
칼 라거펠트가 되살린 18세기 감성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크리용Crillon 호텔 룸을 디자인했다니, 팬들은 그 조합만으로도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이 거장은 새로 리뉴얼된 파리의 크리용 호텔의 3층 스위트룸을 특별히 디자인했다. 회색 돌 특유의 무늬가 드문드문 섞인 흰색 대리석 ‘아라베스카토 판타스티코Arabescato Fantastico’로 꾸며진 욕실은 특히 칼 라거펠트만의 과감함과 전문성이 돋보이는 장소다. 시간을 초월한 세련된 멋의 아이콘인 그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즉 빛의 시대의 장식 예술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결과물을 이곳에서 온전히 느껴볼 수 있다. 크리용 호텔 Hôtel de Crillon
메종 마르지엘라가 바꾼 공간
신비로운 프랑스 패션 감성을 담은 고급 맞춤복,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가 19세기의 특별한 호텔을 창조적으로 변모시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라 메종 샹젤리제 호텔La Maison Champs Elysées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기존 오스만 시대의 장식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적 색채로 재해석된 라 메종 샹젤리제 호텔 곳곳에는 검정색의 둥근 타일들이 흩뿌려져 있고, 안전한 흡연 구역도 새로 만들어졌다. 특히 호텔의 상징과도 같은 백색 살롱의 램프들은 여전히 옛 흔적을 간직하며 이곳만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샹탈 토마스가 ‘죄악’으로 테마를 꾸민 호텔
7층짜리 호텔인 비스 베르사Vice Versa 호텔을 꾸며 보기로 한 디자이너 샹탈 토마스Chantal Thomass는 단번에 이 호텔의 테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바로 인간의 ‘7대 죄악’이다! 초창기 란제리 패션쇼를 개최한 유명 디자이너인 샹탈 토마스이기에 이러한 과감함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달콤한 분위기로 가득한 ‘식탐’ 층, 온갖 사치품들로 착시 효과를 낸 ‘욕망’ 층, 그리고 램프와 침대 머리맡과 전기 스위치에까지 검정색 레이스 장식을 한 ‘색욕’ 층까지, 샹탈 토마스는 작은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죄악을 미덕으로, 그리고 모든 감각의 쾌락으로 과감하게 변모시켰다.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와 함께하는 바로크 여행
전 세계 5개의 대륙을 6층 규모 객실에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생각한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프랑스의 이 독창적인 패션 디자이너는 콩티낭 호텔Hôtel du Continent의 6층(한국식으로 하면 7층)에 ‘극지방’을 만드는 것으로 그 답을 내놓았다. 콩티낭 호텔은 25개의 객실을 전 세계 6곳의 기항지로 꾸며 투숙객들을 가상의 세계일주로 안내한다. 크리스티앙 라크루아는 아프리카 풍의 ‘얼룩말 무늬’ 벨벳 의자와 오세아니아주의 몽환적 나뭇잎이 그려진 커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18세기 유럽의 감미로움을 혼합해, 그 옛날 대 탐험 시대의 환상과 전설로부터 듬뿍 영감을 받은 바로크 세계를 멋지게 재창조했다.
스텔라 카당트의 환상 동화
의상과 보석을 디자인하고 호텔과 레스토랑을 꾸미는 스텔라 카당트Stella Cadente는 ‘환상 동화’의 매혹을 결코 버리지 못하는 디자이너다. 이 디자이너의 동화적 상상력은 오리지널 호텔Hôtel Original의 디자인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눈의 여왕>, <당나귀 가죽 이야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스텔라 카당트는 이 호텔의 38개 객실에 숲과 상상의 동물들, 그림자와 빛, 반영 놀이, 카드 게임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자그마한 조약돌을 포인트로 삼아 시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더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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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Claire Delorme
여행 기자 anneclairedelorme@yahoo.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