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내내 거실을 지키고 있던 크리스마스트리에게 안녕을 고하는 1월 6일 주현절은 동시에 갈레트 데 루아 시즌이 개막되는 날. 갈레트 데 루아는 1월의 기쁨이자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프랑스 셰프 파티시에들에게는 명성을 건 전쟁이기도 하다. 1년 매출을 가늠하는 중요한 프로모션 기간이기 때문. 동네 제과점부터 대형 업체까지 파티스리를 취급하는 모든 업체에서 갈레트 데 루아를 출시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6.99유로부터 75유로까지 가격대도 천차만별인 갈레트 데 루아, 과연 올해의 승자는 누구일까? 파리의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새해 첫날부터 소문이 자자한 셰프 파티시에 3인, 스타일도 컨셉도 다르지만 프랑스 제과 트렌드를 이끄는 3인의 갈레트 데 루아를 소개한다.
니나 메타예 Nina Métayer
니나 메타예는 프랑스 셰프 파티시에중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신세대로 손꼽힌다. 작년 10월 '세계 제일의 셰프 파티시에' 로 선정된 니나 메타예는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장 프랑수아 피에주 Jean François Piège의 업장과 파리에 러시아식 디저트를 유행시킨 푸슈킨 카페 출신이다. 프랑스 제과 업계의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수료한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내는 대신 홈페이지를 열었다. 우버 잇츠, 딜리버루 등 배달 앱에 익숙한 신세대다운 선택! 그녀의 갈레트 데 루아는 프랭탕 백화점과 그녀의 공장이 있는 이씨 레 물리노 Issy les Moulinox의 빌토키 홀 Halles dd'Issy Biltoki 외에는 오로지 그녀의 홈페이지에서만 주문이 가능하다.
올해 니나 메타이예는 세 가지 갈레트 데 루아를 발표했는데 프랑지판과 시트러스가 어우러지는 리미티드 에디션과 프랑지판에 오래 숙성 시킨 럼을 넣은 버전, 그리고 메밀, 아마 씨, 좁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넣은 '비상 L'Envol'이 있다. 이름 그대로 표면에 날아오르는 참새가 섬세하게 '비상'은 르몽드지로부터 놓쳐서는 안 될 갈레트 데 루아라는 호들갑스러운 호평을 받았다. AOP 버터에 전통 방식으로 제분한 밀가루를 쓴 파이지는 공기가 층층이 배여 날아오를 듯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바삭하다. 혀 위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파이지에 고소한 곡류가 씹는 맛을 더해준다.
타피스리 Tapisserie
타피스리는 파리에서 가장 핫한 비스트로 셉팀 Septime의 셰프 베르트랑 그레보 Bertrand Grébaut가 세운 디저트 전문점이다. 몇 달 치 예약이 밀려 있을 만큼 유명한 셉팀은 미슐랭 3스타를 내세우는 미식가용 식당들과는 사뭇 다르다. 기본으로 돌아가 소박하지만 우아하고 알차면서 창의적인 음식을 내놓아 프랑스 미식계를 뒤흔든 베르트랑 그레보 답게 타피스리에서도 여느 유명 디저트 전문점과의 눈에 띄는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바닐라 빈을 아낌없이 넣은 크러스트 슈, 짙은 초콜릿의 맛이 실크처럼 혀에 감기는 초콜릿 타르트, 진짜 땅콩으로 크림을 만든 파리 브레스트 등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박한 디저트를 제대로 만든다. 별 치장 없는 외형에 비해 좀 비싸다 싶은 가격인 데도 일단 먹어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정말 솜씨 있는 프랑스 할머니가 만들어준 맛, 그래서 요즘은 더 귀한 맛이다.
올해 타피스리에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클래식 버전의 갈레드 데 루아와 인도 케랄라에서 나는 이두키 Idukki 카카오를 쓴 초콜릿이 프랑지판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두키 스페셜을 선보인다. 요란한 변주보다 충실한 기본, 내실이 가득한 한입을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을 터.
타피리 Tapisserie Charonne, 65 rue de charonne 75011 Rive gauche, 16 avenue de la motte piquet 75007
세드릭 그롤레 Cédric Grolet
셰프 파티시에 세드릭 그롤레가 오페라 대로에 매장을 낸 이후 진풍경이 하나 생겼다. 남녀노소, 현지인과 관광객을 가리지 않고 뒤 섞여 길게 늘어선 줄이 그것이다. 2011년 파리 르 모리스 호텔의 셰프 파티시에를 맡은 이후 엄청난 유명세를 얻은 세드릭 그롤레는 현재 셰프 파티시에 중 가장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스타 파티시에다. 그의 주 특기는 입이 벌어지는 테크닉. 초콜릿과 크림으로 만들었지만 진짜 레몬이나 초록 사과, 오렌지보다 더 진짜 같은 과일 케이크 속에는 과일을 아낌없이 쓴 필링과 크림, 향신료의 조합이 들어 있다. 세상에 이런 케이크도 있구나, 놀라움을 선사해 주는 테크닉은 완벽해서 그의 케이크들은 유독 SNS에 자주 등장한다. 눈속임 테크닉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 세드릭 그롤레는 크림으로 꽃잎을 형상화 시킨 꽃 시리즈를 런칭했는데 이 역시 보석처럼 아름다운 외관에 신선한 조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바닐라 크림으로 만든 바닐라 크림 꽃 케이크는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가장 값비싼 디저트로도 알려진 세드릭 그롤레의 2024년 갈레트 데 루아는 헤이즐넛이 주제다. 다람쥐가 떠오르는 헤이즐넛 모양의 갈레트 데 루아 안에는 헤이즐넛 크림을 넣은 프랑지판이 들어 있다. 재미난 점은 굵은소금을 넣어 씹히는 맛을 더함과 동시에 단맛이 더욱 도드라지도록 만들었다는 것. 재료에 대한 이해와 예술성이 돋보이는 그롤레의 컨셉트를 느낄 수 있다.
By Jieun LEE
프랑스 생활을 즐기는 봉비방(Bon Vivant)이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