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에 이끌리는 나비처럼, 수백 년간 수많은 화가들은 코트다쥐르의 아름다운 빛에 매료되어 이 지역을 찾았다. 코트다쥐르 해안 여기저기에서는 이곳의 풍경을 이젤에 담아 색채의 거장으로 자라난 예술가들의 흔적을 아직도 느낄 수 있다. 화가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코트다쥐르의 각 도시를 소개한다.
앙리 마티스의 니스
앙리 마티스가 세상을 떠난 1954년, 보 리바주 저택(Hôtel Beau Rivage)과 해변 사이를 분리하던 열대 정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역 영주들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국인 산책로를 당시 즐겨 찾지 않았다. 그러나 마티스가 여생을 보낸 저택의 아름다운 황토색 벽은 과거에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레야 광장(Cours Saleya)에 쏟아지는 햇살을 담아내고 있다.
앙리 마티스는 1917년 처음 니스에 도착했다. 도착한 날부터 며칠간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자, 그는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순간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며 코발트블루 색으로 빛나는 찬란한 바다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때부터 마티스는 코트다쥐르를 떠나지 않았다. 마티스는 프랑스 문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에게 "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이곳의 필연적인 투명함 때문이다."라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 공주는 추방되고 영국 여왕들과 퇴폐주의 작가들,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깃털과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빛나는 니스에서 파티를 벌이던 광란의 1920년대 마티스는 니스의 투명함을 보았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카뉴쉬르메르
1907년, 앙티브 곶까지 펼쳐지는 숨 막히는 파노라마 뷰를 감당할 수 있는 카뉴쉬르메르의 한 웅장한 저택에 르누아르가 정착했다. 카뉴쉬르메르에 도착한 순간 그는 순수함을 떠올리는 햇빛과 올리브나무, 미모사, 오렌지나무가 석양빛에 타는 색감이 펼쳐내는 지중해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1919년 1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르누아르는 카뉴쉬르메르에서 그림과 조각 작품 작업에 미친 듯이 몰두하며 인상주의 예술가로서 삶의 기쁨과 감수성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감동을 자아낸다.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질 부르도스(Gilles Bourdos)는 르누아르의 카뉴쉬르메르 정착기를 주제로 연출한 영화를 2013년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프랑스 배우 미셸 부케(Michel Bouquet)가 르누아르를 연기했다. 르누아르가 당시 거주하던 공간과 사용하던 가구가 남아 있는 저택은 오늘날 그의 회화 작품과 조각 작품, 유리로 된 대형 아틀리에, 그가 즐겨 쓰던 물건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피카소, 보나르, 마티스, 샤갈, 르누아르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코트 다쥐르(Côte d’Azur). 아름다운 풍경과 온화한 기후, 해변 리조트와 언덕 위 마을, 연안과 그 너머에 가득한 햇빛은 수많은 예술가를 사로잡아 왔다. 이를 반영하듯 코트다쥐르에는 하늘과 지중해의 푸르름을 품은 다양한 미술관과 문화예술 공간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파블로 피카소의 앙티브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와 골프 주앙(Golfe-Juan)의 빌라에서 지내던 피카소는 1946년 9월 인근 지역인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Château Grimaldi)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눈부신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진저브레드 색 탑에 테라스가 조성된 특이한 성을 발견한 그는 곧바로 이곳에 매료되었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화가 피카소가 그리말디 성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챈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에게 탑 꼭대기 방을 작업실로 쓰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피카소는 제안을 받아들여 즉시 아틀리에를 꾸려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이 바로 흰 벽에 목이 셋 달린 목신의 모습을 담은 <앙티브의 열쇠들 Les Clés d’Antibes>이다. 그리말디 성에 정착한 지 단 두 달 만에 그는 바다에서 방탕한 순간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거대한 작품 <삶의 기쁨 La joie de vivre>, <앉아 있는 누드 Le Nu assis sur fond vert>, <성게와 여자 La Femme aux oursins> 등 대표작을 포함한 23점의 회화와 44점의 데생을 완성했다. ‘피카소 미술관’으로 공식 승격된 그리말디 성은 현재 여러 세라믹 작품을 포함하여 피카소가 남긴 275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피에르 보나르의 칸
매일 아침 크루아제트의 야자수 그늘 아래 이젤을 세운 채 그림을 그리던 피에르 보나르는 바다를 따라 펼쳐진 드넓은 모래 산책로가 먼 훗날 칸 영화제를 상징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로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1926년 칸은 겨울철 휴양지로 이미 꽤 유명한 마을이었다. 보나르는 해안가가 아닌, 평화로운 카네(Cannet) 지구의 소박한 집을 마음에 들어 했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운하(Canal de la Siagne)와 가까운 카네 지구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지도 있었다. 194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카네 집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칸에서 살며 보나르는 <꽃이 핀 아몬드 나무 L’Amandier en fleurs>, <카네의 풍경 Vue du Cannet>, <욕조 안의 누드 Nu dans la baignoire> 등 오늘날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을 포함해 약 300점의 그림을 그렸다. 보나르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보나르 미술관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그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반려동물을 보며 그가 반려동물에게 쏟은 각별한 사랑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라스
칸의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인 그라스는 중세 시대부터 에센스, 연고, 파우더 재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조향사들에게 유명했다. 수 세기가 흐른 후 1732년 그라스에서 태어난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유럽 전역에서 작품 의뢰 주문을 받는 화가로 자라났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전 세계 최고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세 시대 광장과 불룩한 형태의 벽, 어두운 궁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그라스는 강렬한 오렌지꽃향과 야생 딸기향으로 가득하다. 그라스는 샤넬 넘버 5, 디올 오 소바쥬, 디올 쁘아종 등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의 원산지지만, 그라스가 유명한 이유는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그라스는 식용 향료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250명 이상의 조향 전문가가 그라스에 상주하며 다양한 희귀 에센스를 결합해 새로운 향수 조향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물감을 짜던 과거 화가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폴 시냐크의 생트로페
20세기 생트로페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작은 범선들이 자주 오고 가는 반도 지역이었다. 1892년, 개인 요트 올랭피아(L'Olympia)에 올라 항해하던 폴 시냐크가 생트로페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생트로페에 집을 구하고 작업실도 차렸다. 어부들이 사용하는 작은 항구와 좁은 골목길,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이 온갖 향을 뿜어내는 시장을 오가는 평화로운 생트로페는 여름철이 되면 휴가를 온 제트족들로 붐빈다. 떠들썩한 휴가 분위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아농시아드 미술관(musée de l’Annonciade)을 추천한다. 생트로페가 20세기 초에는 아방가르드 회화 발전의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박물관 내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신선한 바람을 쐬며 폴 시냐크, 프란시스 피카비아, 클로드 모네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제각기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모습을 감상해 보자.
By Eliane Co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