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평원, 습지와 전원, 숲과 황야까지... 프랑스 곳곳에 자리한 54곳의 지역자연공원(Parcs naturels régionaux)에서는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경치, 자연 그대로의 풍경,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평화로운 공생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에코 투어리즘을 장려하고, 만남과 나눔을 통해 자연과 전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피로에 찌든 일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연 속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해 보자.
각양각색의 풍경
지역자연공원 54개 중 52개는 프랑스 본토에, 나머지 2개는 해외영토(각각 마르티니크Martinique, 기아나Guyane)에 위치한다.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오 드 프랑스 지역의 스카프 에스코 (Scarpe-Escaut) 공원과 브르타뉴 지역의 아르모리크(Armorique) 부터, 가장 최근에 조성된 오브락(Aubrac) 과 메독(Médoc) 까지 각각의 공원들은 특유의 풍경과 분위기를 자랑한다. 오베르뉴 지역의 화산공원 (Parc des Volcans)에서는 웅장함을, 베르코르(Vercors)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브리에르 (Brière)에서는 우주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파리 근방에는 작은 규모의 오트 발레 드 슈브뢰즈 (Haute Vallée de Chevreuse)공원이, 상트르 발 드 루아르 지역에는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브렌느(Brenne) 공원이 우리를 기다린다.
보주의 발롱 (Ballons) 공원과 로렌의 자연공원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반면, 코르시카와 카마르그나 오트 알프스 지역의 케라스(Queyras), 기아나의 자연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어 조용히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지역자연공원은 '프랑스의 위대한 명소' 중 30%, 프랑스 생물권 보호지역 14곳 중 9곳을 품고 있으며, 루아르 앙주 투렌(Loire-Anjou-Touraine) 자연공원의 루아르 강변, 코르시카의 스캉돌라(Scandola) 자연보호구역은 유네스코에서 자연 유산으로 인정받은 세계적인 명소다. 이 수많은 공원들 중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아래 여행 테마별로 소개하는 글에 주목해보자.
식도락을 위한 자연공원
잘 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미식을 빼놓고 삶의 즐거움을 논할 수 없다. 54개 지역자연공원 중 그 어디를 가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큰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그중에서도 코스 뒤 케르시(Causses du Quercy) 공원과 페리고르 리무쟁(Périgord-Limousin) 공원에서는 푸아그라, 트러플 버섯, 호두, 사프란은 물론이고, 지역 특산물인 로카마두르(Rocamadour)의 치즈도 맛볼 수 있다. 치즈 덕후라면, 콩테를 맛볼 수 있는 오 쥐라(Haut-Jura) 공원, 묑스테르(Munster)로 유명한 발롱 데 보주(Ballons des Vosges) 및 보주 뒤 노르(Vosges du Nord), 로크포르 치즈가 있는 그랑 코스(Grands Causses), 그리고 캉탈이 만들어지는 오브락(Aubrac) 공원 사이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끝없는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오베르뉴의 화산공원도 침샘을 자극하는 별미로 우리를 유혹한다. 감자 퓌레로 만든 알리고(aligot), 단짠의 정석 푼티(pounti) 중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자연공원
와인으로 치자면, 메독에 비할 곳이 없다. 4곳의 자연공원(랑드 드 가스코뉴Landes de Gascogne, 페리고르 리무쟁, 마레 푸아트뱅Marais Poitevin, 밀바슈 앙 리무쟁Millevaches en Limousin)이 모여 있는 누벨 아키텐 지역의 메독 포도밭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와인 관광지다. 보르도와 보르도 와인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이곳 포도원은 보르도의 와인 루트에 포함된 지역이기도 하다. 오 랑그독 (Haut-Languedoc) 자연공원의 포도원으로 가면 좀 더 거친 노트의 와인을 감상할 수 있다. 톡톡 튀는 스파클링 와인을 선호한다면 샹파뉴 지역이나 몽타뉴 드 랭스 (Montagne de Reims)의 구릉지대로 방향을 틀자. 혹시 알자스의 와인 루트가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발롱 데 보쥬 공원으로 가서 숲 속 산책로를 거닐며 황홀한 파노라마를 만끽하면 된다.
천체 관측을 위한 자연공원
도시의 빛으로부터 떨어진, 영롱하고 드넓은 하늘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지역자연공원들에서는 천체관측 초보자부터 천문학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코스 뒤 케르시 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케르시의 검은 삼각형(triangle noir du Quercy)’은 프랑스에서 별을 관찰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다. 생 베랑(Saint-Véran) 관측소, 케라스(Queyras) 공원, 오트 알프스 공원, 바로니 프로방살(Baronnies provençales) 공원에서도 황홀한 밤, 별들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프로방스 베르트(Provence Verte) 지역에 자리한 생트 봄(Sainte-Baume) 자연공원에서도 우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밤하늘 보호지구(dark-sky preserve)’로 지정된 부르고뉴의 모르방(Morvan) 공원을 만날 수 있다.
탁 트인 공간을 선사하는 자연공원
광활한 지중해와 드넓은 벼논 사이로 펼쳐진 프로방스의 카마르그 지역자연공원은 바다 내음이 가득한 지상 천국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숨이 멎을 듯한 풍경으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공원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밀로 (Millau) 구름다리가 공중 곡예를 펼치는 그랑 코스 공원의 라르작(Larzac) 평야부터, 새를 관찰할 수 있는 명소로 잘 알려진 노르망디의 코탕탱&베상 습지 공원 (Parc des marais du Cotentin et du Bessin)과 오 드 프랑스의 오팔 습지 공원(Parc des caps et marais d’Opale)까지 실로 다양하다.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만나고 싶다면 아르데슈 산맥(Monts d’Ardèche) 자연공원을 추천한다. 브르타뉴에 위치한 아르모리크(Armorique) 공원은 아레 산맥(Monts d’Arrée)에서 시작하여 크로종(Crozon) 반도까지 시원하게 펼쳐지며, 바다 끝에 펼쳐진 수평선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루아즈(Iroise), 상(Sein), 몰렌느(Molène)과 우에상 (Ouessant)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사 덕후들을 위한 자연공원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역자연공원에서는 파릇파릇한 녹음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라면 자연에서도 결코 문화와 역사가 빠질 수 없다. 역사가 특별한 유산을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보자면, 프랑스 왕들이 아꼈던 정원과 아름다운 고성을 만끽할 수 있는 루아르 앙주 투렌 공원의 루아르 강변을 추천한다. 인상파 작가들이 열렬히 사랑했던 부클르 드 라 센 노르망드(Boucle de la Seine Normande)에서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오 드 프랑스로 향하면 스카프 에스코의 광산 지대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의 자연공원은 루브르 박물관 랑스 분관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걸어서 만나는 자연공원
지역자연공원에 도착했다면, 신발끈을 질끈 묶고, 등산스틱을 들거나 자전거에 올라 냇가를 따라 열심히 나아가 보자.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트레킹과 사이클을 번갈아 가며 즐길 수도 있다. 가파른 산악길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샤르트뢰즈(Chartreuse), 보주 산맥(Massifs des Bauges), 베르코르, 프레알프 다쥐르(Préalpes d’Azur)와 피레네 아리에주아즈 에 카탈란느(Pyrénées ariégeoises et catalanes)를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알프스나 피레네 산맥의 봉우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다. 느긋한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브르타뉴의 골프 뒤 모르비앙(Golfe du Morbihan)이나 노르망디의 페르슈(Perche) 공원의 구불구불한 산책길이 있다. 벡생 프랑세(Verxin français) 공원나 오트 발레 드 슈브뢰즈 공원에서는 푸릇푸릇한 풍경을, 파리 근방에 위치한 가티네 프랑세(Gâtinais français) 공원에서는 아름다운 숲을 만끽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만나는 자연공원
오베르뉴 화산공원에서 페달을 밟으며 산맥을 오르거나, 샹파뉴 포도원의 언덕을 내달려 포레 도리앙(Forêt d’Orient) 공원의 평화로운 호숫가에 다다르는 것은 어떨까? 사이클을 좋아한다면 프로방스의 매력 또한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라벤더와 올리브 밭에 마음을 뺏기며 뤼베롱 공원이나 알피(Alpilles) 공원을 가로질러보자. 이곳에서는 전기 자전거도 이용할 수 있다! 평탄한 지형을 선호한다면, 랑드 드 가스코뉴 (Landes de Gascogne) 지역자연공원에서 소나무와 고사리밭 사이로 난 사이클 도로를 추천한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아르카숑 만(Bassin d’Arcachon)에 가면 레어(Leyre)강변에서 새를 관찰할 수 있으니, 페달을 밟는 대신 시도해볼 만한 액티비티다.
배를 타고 만나는 자연공원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다면, 코스 뒤 케르시 공원의 도르도 골짜기에서 카누에 올라보자. 우아한 고성과 전원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질 것이다. 베르동 지역자연공원 내에 있으며, 프로방스 베르트의 보석이기도 한 베르동 협곡에선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카누를 타고 코르시카 공원의 비자보나(Vizzavona) 숲을 가로지르면 다른 차원의 감동을 느낄 수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 볼(La Baule) 근방에 위치한 브리에르 공원과 대서양 해변에서 멀지 않은 마레 푸아트뱅 공원에서 차분한 크루즈 투어를 즐기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By Pascale Filliâtre
여행 전문 기자, 프랑스 문화를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여행 전문 기자. filliatre.pascale@orang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