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뿌리를 내린 명품 브랜드들은 프랑스를 애정한다. 프랑스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안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프랑스의 다양한 장소를 명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화려한 런웨이로 주목받은 프랑스의 특별한 도시는 어디일까?
보랏빛 천국, 발랑솔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Simon Porte-Jacquemus)는 2019년 6월,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 장소로 발랑솔(Valensole) 언덕 라벤더밭을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평소 고향인 살롱 드 프로방스를 사랑하고 프로방스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을 선보이던 디자이너였다. 발랑솔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1년 중 300일이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곳이다. 특히 자크뮈스 패션쇼가 열린 6월부터 7월까지 향긋한 라벤더로 가득해 라벤더 로드 트립의 최대 목적지로 꼽힌다. 프랑스 최대의 라벤더 생산지이기도 하다. 자크뮈스의 패션쇼는 발랑솔이 가장 빛나는 시기, 가장 ‘발랑솔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내리쬐는 태양(꾸 드 솔레이, Coup de soleil)’이라는 주제로 보랏빛 라벤더 사이에 핑크색 런웨이를 펼쳐놓고 화려하게 진행된 것. 우아한 파스텔톤 컬러와 플라워 패턴 등 당시 컬렉션은 발랑솔의 풍경 속에서 더욱 빛을 냈다. 사실 발랑솔은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로드로 이미 수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른 여행지다. 지평선 너머로 바람에 흔들리는 라벤더 속에 서면 아무렇게나 찍어도 인생 사진을 건질 확률은 99.9%에 가깝다. 우울함은 쫓고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는 라벤더. 그러니 발랑솔에서 행복해질 확률은 100%다.
럭셔리 = 생트로페
샤넬이라면 한 번쯤은 필연적으로 생트로페(Saint-Tropez)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을 테다. 생트로페는 작은 어촌 마을처럼 보이지만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과 부호들이 휴가지로 선택하는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그림 같은 항구와 구시가지 속에는 수준 높은 방문객들을 만족시킬만한 고급 호텔들과 명품 브랜드들이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2011 S/S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로 생트로페를 선택한 이유는 차고 넘쳤을지도 모른다. 샤넬의 2011 S/S 크루즈 컬렉션은 생트로페에서도 강렬하고도 감각적인 빨간색 간판이 돋보이는 카페 세네키에(Café Sénéquier)에서 열렸다. 카페 세네키에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2>에도 등장한 생트로페의 대표 레스토랑이다. 식사와 디저트 등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지만 비싼 편이다. 하지만 샤넬의 눈에 든 레스토랑이 궁금한 이들로 언제나 붐빈다.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지중해 휴양지의 분위기를 담은 당시 컬렉션 역시 과감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생트로페에 있는 샤넬, 디올 매장은 시즌마다 생트로페만의 특별함을 담은 팝업 부티크를 선보이며 생트로페의 품격을 한껏 치켜세우고 있다.
도시 전체가 런웨이, 파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4대 패션쇼 중 하나가 바로 파리 패션 위크다. 파리 패션 위크는 역사나 규모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도 언제나 화제를 모으는 행사다. 그래서 파리는 1년에 두 번씩,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은 파리 곳곳을 런웨이로 삼는다. 특히 샤넬은 그랑 팔레(Grand Palais)와 파트너십을 맺고 이곳에서 매년 기발한 패션쇼를 펼치기로 유명하다. 2023년 디올은 튈르리 정원을, 루이비통은 오르세 미술관을, 크리스찬 루부탱은 오페라 코미크 극장을 런웨이로 활용했다. 그밖에도 입생로랑은 에펠탑 아래에서 트로카데로 분수를 따라 화려한 레이저 쇼를 선보이고, 쿠레주는 생 마르탱 운하를 네온사인으로 장식하며 감각적인 런웨이를 구현하기도 했다. 어쩌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이 프랑스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본질적인 장소는 파리였던 걸까? 수많은 명품을 낳은 파리. 진짜 명품은 파리일지도 모른다.
By Ko Eun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