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쉬 드 노엘을 마음껏 먹을 수 있던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렸다는 아쉬움을 달래 줄 디저트가 있다. 바로 매년 1월 프랑스인들이 먹는 ‘왕들의 갈레트’, 갈레트 데 루아(galette des rois)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파티시에들은 프랑지판 크림, 퍼프 페이스트리, 브리오슈 반죽, 아몬드, 초콜릿, 시트러스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전통 레시피를 대담하게 재해석해 깊은 풍미와 훌륭한 질감을 고루 갖춘 갈레트를 선보인다. 파리, 발레 뒤 론, 오 드 프랑스, 프로방스 등 프랑스 지역 곳곳에서 올해 선보여지는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갈레트 12종을 소개한다.
피에르 에르메 Pierre Hermé – 새콤한 맛을 품은 갈레트
2023년 주현절을 맞아 피에르 에르메는 레몬을 곁들인 아몬드 크림, 설탕에 절인 자몽 제스트를 주재료로 한 갈레트를 선보인다.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피에르 에르메 갈레트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시칠리아 과수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빠질 것이다. 퍼프 페이스트리의 바삭함과 시트러스의 상큼함이 어우러진 이 갈레트를 완성하는 재료는 시칠리아 과수원에서 나는 과일 뿐만이 아니다. 총 11개 갈레트에는 1부터 11까지 번호가 새겨진 세라믹 소재 페브(fève)가 숨어 있다. 금칠이나 은칠이 된 마카롱 모양의 페브를 찾은 이들은 그날 하루 갈레트의 왕으로 뽑혀 페브의 주인이 된다. 파리 조폐국(Monnaie de Paris)에서 출시한 특별 한정판 페브이니 소장 가치가 있다. 피에르 에르메의 맛있는 갈레트를 나눠 먹고 파리 조폐국 한정판 페브를 차지하기 위한 보물찾기에도 도전하며 갈레트의 달인 1월을 즐겁게 보내 보자.
피에르 쇼베 Pierre Chauvet – 초콜릿을 아낌없이 더한 갈레트
프랑스 북부 사람들은 갈레트를, 남부 사람들은 브리오슈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피에르 쇼베는 모든 프랑스인의 명절인 주현절을 맞아 남북을 평화롭게 통일하는 갈레트를 선보인다. 아르데슈의 오브나(Aubenas)와 발레 뒤 론의 발랑스(Valence)에 각각 위치한 피에르 쇼베 매장 두 곳에서 화합의 갈레트를 구입할 수 있다. 투톤 브레이드 브리오슈와 구운 헤이즐넛 프랑지판, 헤이즐넛 프랄린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피에르 쇼베 갈레트를 베어 물면 ‘갈레트 대 브리오슈’ 경쟁심이 저절로 사그라들 것이다. 피에르 쇼베 갈레트의 화룡점정은 갈레트 위에 얹어진 커다란 밀크 초콜릿 조각이다. 1월에는 갈레트를 맛있게 먹고, 다이어트는 2월부터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각 지역의 풍미를 담은 식도락 여행을 좋아하는 미식가라면 아르데슈산 멜론을 품은 갈레트나 홈메이드 스프레드를 곁들인 프랑지판 갈레트를 시식하며 어떤 버전이 더 맛있는지 즐거운 논쟁을 펼쳐 보자.
르노트르 Lenôtre – 아늑한 핫초코를 떠올리는 갈레트
겨울이면 벽난로 가까이 앉아, 또는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핫초코를 홀짝이는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만 싶다. 달콤한 코코아 향을 머금은 핫초코에 부드러운 갈레트까지 곁들여 먹으며 즐기는 ‘집콕’이야말로 완벽한 휴일이 아닐까? 르노트르의 신임 셰프 에티엔 르루아(Étienne Leroy)는 아몬드 페이스트와 초콜릿 소스를 조합한 금빛 커피잔 모양의 갈레트 데 루아를 선보인다. 캐러멜을 바른 퍼프 페이스트리는 갈색 잔을, 다크 초콜릿을 믹스한 아몬드 크림은 잔에 담긴 핫초코를 완벽히 재현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삭바삭한 핫초코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르노트르 갈레트를 추천한다.
쇼콜라 세브 Chocolat Sève - 리옹식 갈레트
리옹은 프랄린이 보졸레(Beaujolais)나 로제트 드 리옹(rosette de Lyon)만큼이나 사랑받는 도시다. 그러니 리옹의 갈레트 데 루아에 작고 바삭한 붉은색 아몬드 씨가 들어있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리샤르 세브(Richard Sève) 셰프는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빈을 넣은 페이스트리를 19세기 말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통 구리 터빈에 넣어 리옹식 갈레트를 구워낸다. 리샤르 세브가 선보이는 갈레트 위에는 알파벳 ‘S’가 인장처럼 선명히 새겨져 있다. 신기술을 활용해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혁신적인 데코레이션이다. 곧 각 고객이 희망하는 이니셜 추가 서비스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리옹의 갈레트를 구입할 때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이니 잘 기억해두자.
라 뒤레 Ladurée – 바스크식 갈레트
쥘리앵 알바레즈(Julien Alvarez) 셰프가 선보이는 라 뒤레의 시그니처 갈레트 데 루아는 바스크 케이크와 전통 갈레트 간 균형 잡힌 매력이 특징이다. 층층이 쌓인 부드러운 페이스트리가 자랑하는 크리미한 질감과 깊은 풍미가 라 뒤레 갈레트만의 차별점이다. 퍼프 페이스트리로 완성된 브리오슈는 피스타치오 아몬드 크림과 피스타치오 칩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달콤한 오렌지꽃내음까지 더해졌다. 균형 잡힌 맛과 편안한 식감을 고루 잡은 라 뒤레 스타일의 갈레트를 강력히 추천한다. 갈레트뿐만 아니라 올해 라뒤레에서 선보이는 마카롱과 이스파한에도 페브가 숨어 있으니 꼼꼼히 찾아서 컬렉션을 완성하는 행운도 잡아 보자.
테르 블랑슈 Terre Blanche – 프로방스식 갈레트
프로방스 대표 디저트 TOP 13에도 소개된 칼리송(calisson)은 크리스마스이브뿐 아니라 일 년 중 언제든 즐기기 좋은 디저트다. 프로방스와 코트다쥐르 사이 바르주 배역에 자리 잡은 테르 블랑슈 호텔 스파 골프 리조트의 신임 셰프 파티시에 제레미 그레시에(Jérémie Gressier)는 칼리송의 특징을 되새기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러 파티스리에서 영감을 받아 갈레트 데 루아를 완성했다. 프랑스 피레네산 아몬드 바닐라 프랄린과 시트러스 마멀레이드는 갈레트의 중추인 아몬드 프랑지판 크림과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100% 프로방스 느낌 가득한 갈레트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테르 블랑슈의 갈레트를 추천한다.
필리프 콘티치니 Philippe Conticini – 여성과 연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갈레트
필리프 콘티치니 셰프는 프랑스 미디어인 <레 제클뢰르즈 Les Éclaireuses>와 3년 연속 협업하여 특별한 갈레트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콘티치니 셰프는 ‘왕들의 갈레트’인 갈레트 데 루아가 아닌, ‘여왕들의 갈레트’인 갈레트 데 렌느(galette des reines)를 선보인다. 윗면과 아랫면을 뒤집어 한층한층 조심스레 쌓아 올려 더욱 바삭한 리버스 퍼프 페이스트리, 헤이즐넛 파우더를 곁들인 부드러운 프랑지판 크림이 들어간 갈레트 데 렌느는 파리에서 명성을 떨치는 콘티치니 자신의 시그니처 갈레트 데 루아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되었다. 하지만 갈레트 데 루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갈레트 데 렌느만의 독특한 특징이 두 가지 있다. 갈레트 데 렌느를 베어 물면 헤이즐넛 향을 가득 머금은 동그란 잔두야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색다른 향을 선사한다. 아울러 갈레트 데 렌느에 숨겨진 페브에는 ‘중요한 당신’, ‘꼭 필요한 당신’, ‘강력한 당신’, ‘모든 것의 중심인 당신’, ‘소중한 존재인 당신’ 등 여성들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여성 친구들끼리 선물로 주고받으며 끈끈한 연대를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
메종 메에르 Maison Méert - 어두운 겨울을 밝히는 갈레트
릴 구시가지에 자리 잡은 메종 메에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제과점으로 손꼽힌다. 유구한 전통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혁신성도 고루 갖춘, 프랑스 제과를 대표하는 진정한 명소인 메종 메에르에서는 한겨울에도 여름을 떠올리는 따뜻한 향기가 퍼져 나온다. 올해 주현절을 맞아 메종 메에르는 살구 콩피와 아몬드 프랑지판 크림을 곁들인 아몬드 크런치를 중심으로 재창조한 갈레트 데 루아를 선보인다. 한파에 얼어붙은 듯 정체된 겨울 일상에 신선한 환기가 필요하다면 다양한 풍미가 화사하게 어우러진 메종 메에르 갈레트를 먹어 보자.
메종 베로 Maison Vérot –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갈레트
짭짤한 요리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갈레트 데 루아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메종 베로의 갈레트에는 프랑지판 크림과 초콜릿, 헤이즐넛이 없다. 대신 페르슈산 돼지로 만든 소와 오리 푸아그라가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갈레트 표면은 바삭한 퍼프 페이스트리로 코팅되어 있다. 식사 테이블에 올려도 손색없는 이색적인 갈레트를 찾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라 메종 뒤 쇼콜라 La Maison du Chocolat – 초콜릿향이 넘치는 갈레트
초콜릿, 레몬, 헤이즐넛. 2023년 겨울을 맞아 모든 미식가에 즐거운 충격을 선사하겠다는 야심으로 메종 뒤 쇼콜라가 선보이는 갈레트 데 루아의 주재료 3인방이다. ‘왕들의 태양’이라는 뜻의 솔레이 데 루아(Soleil des Rois)라 불리는 라 메종 뒤 쇼콜라 갈레트는 프랑스 국가 지정 명장(Meilleur Ouvrier de France) 니콜라 클루아조(Nicolas Cloiseau) 셰프의 손에서 완성됐다. 솔레이 데 루아만의 비밀은? 3층에 걸쳐 선보여지는 다양한 풍미의 대조와 조화다. 1층은 설탕에 절인 레몬 제스트와 진한 다크 초콜릿 가나슈를 곁들인 헤이즐넛 크림이 단단히 받치고 있다. 2층은 레몬즙 버블을 품은 캐러멜 퍼프 페이스트리가 촉촉이 채운다. 꼭대기 층인 3층에는 구운 헤이즐넛으로 장식된 초콜릿 왕관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니콜라 클루아조 셰프는 1월 내내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솔레이 데 루아를 만들겠다고 한다. 망설이지 말고 주문하자.
페닌슐라 파리 The Peninsula Paris – 타히티의 매력을 담은 갈레트
루아얄 몽소 Royal Monceau – 프랄린 향이 가득한 갈레트
루아얄 몽소 라플 파리의 셰프 파티시에 캉탱 르샤(Quentin Lechat)가 선보이는 갈레트는 올해 가장 맛있는 갈레트 중 하나로 손꼽힌다. 브라질산 아몬드와 너트로 만든 프랄린이 섬나라의 풍미를 머금은 프랑지판 크림과 조화를 이루는 맛을 경험하면 따뜻한 유토피아로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에 빠져들 것이다. 소량 첨가된 럼과 바닐라는 미뢰에 아찔한 행복감을 더해 준다. 여기에 정통 프랑스 식자재인 이즈니 버터를 바른 리버스 퍼프 페이스트가 루아얄 몽소 갈레트의 화룡점정을 완성한다.
By Kévin Bonn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