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쇼몽국제정원축제(Festival International des Jardins de Chaumont-sur-Loire)는 관람객의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시켜왔다. 다음 축제가 열리길 기다리며 예술적 유토피아의 기록 속에서 상상의 산책을 즐겨보는건 어떨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시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제멋대로인 이 곳의 다양한 모습들을 들여다보자. 모두가 기억하고 꿈꾸는, 곧 다시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정원 몇 곳을 추려보았다.
영원한 낙원
여기서 말하는 '영원함'이란 페르시아 정원에서 언급되는 낙원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잎이 우거진 '정글' 위에 달랑거리는 보라색 비닐봉지를 이야기한다. 물을 줄 필요도,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지만 일년 내내 정원의 색깔이 유지되는 이상적인 '재배법'으로 가꿔진 곳이다. 허공에 달려있는 비닐봉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작가가 플라스틱 없인 살 수 없는 현 시대에 대해 고찰해보길 제안하는 듯하다.
정원 아일랜드
물에 비친 풍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참 동안 빠져들어 감상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저 나무는 왜 혼자 우뚝 서있을까?' 홀로 서 있는 저 나무가 바로 작품 "섬의 가능성(La Possibilité d'une île)"이다. 섬이라기 보단, 물이 차올라 공간이 줄어든 '정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까.
꽃길
초목길을 걷다 갑작스레, 형형색색 다양한 색의 향연이 나타난다. 장치 역할을 하도록 설치된 거울 덕분에 색깔의 화려함이 배가된다. 미디어에서 벗어나 자연을 감상할 시간을 가질 기회다.
공상적인 오아시스
지구 온난화를 떠오르게 하는 날 것 그대로의 지면과 꿈 속에서나 보던 공중도시가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은 무성한 식물. 그 중심엔 기술과 환경 보존을 이어주는 오아시스가 자리하고 있다. 참으로 공상적인 풍경이지 아니한가.
희귀한 보물
때로는 몽상가 같고 때로는 시인 같은 정원 창작자들은 자연을 소재로 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는다. "식물 호기심의 방(Cabinets de curiosités végétales)"은 식물을 기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공간 하나에 한 그루씩 배치된 희귀 종려나무는 마치 보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대 죄악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에덴 동산에 다시금 죄악을 퍼트린다? 이처럼 미친 생각이 또 있을까. 덤불 한 가운데 뜬금없이 자리한 거울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본인의 외모에 심취해있던 나르키소스처럼 말이다. 뿐만 아니라, 물 속에 숨겨진 정원, 물에 비친 구름, 혹은 거울 너머로 보이는 풍경 등 겉으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달콤한 속삭임
새가 지저귀고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 사이로 35개의 목소리가 35개의 언어로 « 사랑해 »를 속삭인다. 어찌 ‘사랑의 정원’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무한으로 늘어져있는 빨간 버드나무 속에 서있노라면 실제 삶에서도 가끔 그러하듯,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게 된다. 청각을 이용해서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니. 게다가 ‘사랑해’처럼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면 그 감동은 훨씬 증폭된다.
지상에서
넝쿨식물을 땅 밖에서 자라게 하기. 장필리프 푸아레빌(Jean-Philippe Poirée-Ville)의 괴짜스러운 도전이 공중 재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곡선을 그리며 뒤엉켜 자란 ‘공기의 요정(Sylphe)’, 넝쿨들은 직선으로 뻗은 성의 선과 대비를 이루며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생물다양성
땅 속에서 막 솟아 오른 듯한 대형 양파 모양의 조형물들이 실로 탐스러워 보인다. 풍요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이 작품은 토지의 역할을 넘어, ‘행복한 생물 다양성의 예술(l’Art de la biodiversité heureuse)’과 정원의 미래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정원에서 울리는 재즈
파스텔 톤의 초원과 재즈살롱의 어두운 보물 사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목소리로 재즈 발라드 곡 '바디앤소울(Body and soul)'이 들린다. 빌리 홀리데이를 기리면서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정원이다.
희망을 담은 붉은 꽃밭
경계태세를 갖추기라도 해야 하듯, 붉은 꽃밭은 당장 도사릴 위험을 예고하는 듯하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현 시대에 알맞는 메세지다. 그래도 붉은 희망의 끈을 놓치진 말자. 심장처럼 뛰는 덤불 속 우리의 삶은 존재하고 있으니.
By 안-클레르 들로름(Anne-Claire Delorme)
여행 기자 anneclairedelorme@yahoo.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