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분관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유치를 희망하는 프랑스의 도시는 많았다. 최종 단계에서 6개 도시가 경합한 끝에 랑스가 선택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만, 과거 산업도시의 재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예술 경험 확산이라는 짤막한 서술만으로는 와닿지 않는다. 직접 랑스에 방문해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분위기에 가 닿아야 한다. 광산 갱도 부지에 건축된 루브르 랑스(Louvre Lens)는 2012년 개관하며 작은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자유로운 예술의 시공간, 갤러리 뒤 탕(Galerie du temps)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 있는 루브르 랑스의 갤러리 뒤 탕(Galerie du temps)은 ‘시간의 갤러리’라는 뜻처럼, 인류의 5000년 역사를 연대순으로 망라한다. 전시실 초입에 서면 완만한 내리막 경사로 인해 공간과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시점에서 기원전 400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세월이 겹겹이 펼쳐지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며 이동할 때는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전시 공간이 단색으로 이루어진 데다 알루미늄 벽의 흐릿한 반사가 시공의 모호한 순간을 만들며 몰입감을 높인다.
새로워진 루브르 랑스 박물관
올가을 갤러리 뒤 탕은 개관 이래 12년 만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200점 이상의 새로운 작품이 ‘시간의 강’이라는 배치로 구성된다고 하니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된다. 마침내 2024년 12월 4일, 광부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성 바르바라 축제(Les Fêtes De La Sainte Barbe)의 일환으로 재개관한다는 소식. 다양한 워크숍뿐 아니라 공연과 불꽃놀이 등 성대한 오프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광부들의 흔적을 담은 레스토랑, 르 갈리보(Le Galibot)
루브르 랑스 인근의 레스토랑인 르 갈리보(Le Galibot)는 탄광 마을이었던 과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갈리보는 프랑스 북부의 방언으로 석탄 광산에서 일하는 어린 노동자를 일컫는다. 광부들의 주거지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하여 오텔 뒤 루브르 랑스(Hôtel du Louvre Lens)를 열었고 그 안에 레스토랑도 자리한다. 르 갈리보는 제철 재료로 창의적인 현지 요리를 펼친다. 레스토랑과 동명으로 검은 산처럼 보이는 초콜릿 디저트는 랑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광재 더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광재 더미는 석탄 채굴 과정에서 사암이나 셰일 등의 잔해가 쌓여 형성된 언덕으로 하이킹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랑스 사람들은 광부들의 용기로 만들어진 이러한 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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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넙-넙비스(Le 9-9bis)
1990년 12월 21일, 마지막 화차가 갱구로 옮겨지며 약 300년간 이어진 노르 파 드 칼레(Nord-Pas de Calais) 지역의 탄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 그곳은 과거의 유산을 기념하고, 현대의 문화예술이 펼쳐지는 르 넙-넙비스(Le 9-9bis)로 탈바꿈했다. 채굴 시설과 샤워실 등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노르 파 드 칼레 광산(Nord-Pas de Calais Mining Basin)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 각종 공연과 전시 등도 활발히 열리며 음악에 특화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캐나다 국립 비미 기념관
드넓은 평원에 각각 프랑스와 캐나다를 상징하는 두 탑이 27m 높이로 솟아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 부지를 캐나다 정부에 기증하며 양국이 우호를 다졌다. 프랑스에 있는 캐나다의 국립 사적지다. 비미 기념관(Mémorial national du Canada à Vimy)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캐나다 군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1917년 이곳에서 캐나다 군단이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운 끝에 고지를 점령한 비미 능선 전투(Battle of Vimy Ridge)에 관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재건된 참호와 지하 터널 등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도 가능하다. 20캐나다달러 지폐에 새겨진 이곳은 캐나다 최초의 해외 파병으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이들에게 헌사를 전하는 동시에 자국의 역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기념관 주변은 캐나다에서 공수한 나무와 관목이 뿌리내려 울창한 숲을 이룬다.
💌 TIP
에어프랑스가 인천-파리 노선을 매일 운항한다.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랑스까지 TGV를 이용할 수 있으며, 레일 유럽을 통해 예약 가능하다.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10분.
By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코리아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