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는 옥시타니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다. 중세부터 번영한 이 도시는 유럽 내에서도 유서 깊기로 유명한 몽펠리에 대학(1220년 개교)과 와인 산지를 품고 있다. 몽펠리에는 스포츠와도 연관이 깊은데 핸드볼과 럭비 그리고 축구단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축구단인 몽펠리에HSC는 리그앙(1회)과 프랑스컵(2회)을 모두 차지한 경험이 있는 은근한 강자다. 이 팀이 품은 스토리는 더 많다.
변화에 익숙한 팀..팀명, 상징색
몽펠리에HSC는 리그앙 구단 중 변화에 가장 익숙한 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일단 구단명을 열 차례 이상 바꿨다. 1919년에 창단한 구단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몽펠리에랭 Stade Olympique Montpelliérain'이었는데 (이 이름을 이후에 두 번 사용), 1926년에 팀명을 '스포 올랭피크 몽펠리에랭 Sports Olympiques Montpelliérains'으로 변경했다. 이후 '유니옹 데 스포 올랭피크 몽펠리에랭Union des Sports Olympiques Montpelliérains(1941-1944)', '몽펠리에 리토랄 스포츠 클럽Montpellier Littoral Sport Club(1970-1974)', '몽펠리에 라 파이아드 스포츠 클럽 리토랄Montpellier la Paillade Sport Club Littoral(1974-1976)', '몽펠리에 파이아드 스포츠 클럽Montpellier Paillade Sport Club(1976-1989)'을 거쳐 1990년에 현재 이름인 '몽펠리에HSC'가 됐다. 구단을 상징하는 색상도 처음에는 흰색과 빨간색이었는데, 1993년에 구단을 지원하는 몽펠리에 의회의 요청으로 지금 색상인 오렌지색과 파란색으로 바꿨다. 현 구단 엠블럼 형태는 2000년부터 사용 중이다.
괴짜 구단주, 룰루
지난 2017년 작고한 전 구단주 루이 니콜랭(일명 룰루, 1943~2017)은 몽펠리에HSC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아버지가 세운 니콜랭 그룹(groupe Nicollin)에서 일하며 실력을 키웠고, 1974년 몽펠리에HSC 회장이 되면서 축구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몽펠리에HSC는 6부리그에 해당하는 division d'honneur에서 속한 아마추어팀이었다. 그는 40만 프랑을 내고 구단을 인수하고, 이후 그의 친구가 된 조르주 프레슈 몽펠리에 시장과 함께 팀을 재건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그는 팀을 사들인 지 8년 만에 1부에 올려뒀다. 1990년에는 프랑스컵 우승, 2011-12시즌에는 리그앙 우승도 견인했다. 그는 파리생제르맹을 제치고 우승한 뒤에 머리를 구단 상징색인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염색하기도 했다. 룰루는 스포츠에 관심이 컸고, 그가 모은 여러 종목 유니폼으로 개인 박물관을 세웠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로랑 니콜랭이 구단주다.
프랑스판 동화
몽펠리에HSC는 2011-12시즌에 리그앙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도 그들의 우승을 예측하지 못했다. 바로 전 시즌인 2010-12시즌에 리그 14위(승점 47)였던 팀이 카타르 투자청을 등에 업은 파리생제르맹을 이기고 우승컵을 거머쥐리라 생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몽펠리에HSC는 해당 시즌 득점왕인 올리비에 지루(21골, 9도움)를 앞세워 25승 7무 6패라는 성적을 거두며 승점 82점을 얻었다. 2위 파리생제르맹을 승점 3점 차이로 제치고 우승했다. 지루라는 걸출한 공격수 덕을 봤으나 무엇보다 34골(최소 실점)밖에 내주지 않은 조직력이 일등공신이었다.
스타드 드 라 모송
홈 경기장인 스타드 드 라 모송은 1972년 완공된 22,000석 규모 경기장으로 축구와 럭비팀을 모두 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몽펠리에 시민들은 럭비도 매우 사랑한다. 이 경기장은 두 종목 경기를 무리 없이 치르려고 하이브리드 잔디를 사용한다. 몽펠리에HSC는 이 경기장을 루이 니콜랭 전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1974년부터 사용했다. 처음에는 경기장 시설이 낙후되고 배수도 잘되지 않아서 비가 오면 경기장 전체가 진창이 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1977년부터 구단과 지자체가 합심해 경기장을 개선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8년에야 현재 모습을 만든 리노베이션 공사가 끝났다. 경기장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1997년에 다시 한번 단장했다. 1988년 3만 석 규모였던 수용인원은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27,000석, 다시 22,000석으로 줄었다. 이 경기장의 별명은 악마의 냄비(marmite du diable)다. 과거 경기장 시설이 열악했을 때 경기를 보려고 나무 위에 있던 팬들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국대 수비수’ 로랑 블랑이 최다 득점자?
이 구단 정보를 둘러보다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대 최다 득점자다. 대개 국가대표급 공격수들이 이름을 올리는 이곳에,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철벽 수비로 프랑스 대표팀 우승을 견인한 로랑 블랑이 있다. 블랑은 291경기에서 84골을 뽑으면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이 팀에서 공격수로 활약한 술레만 카마라(76)보다 더 적은 경기를 뛰고도 더 많은 골을 넣었다. 물론 2부리그에서 넣은 골도 29골이나 있지만, 수비수가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블랑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공격수였고, 몽펠리에HSC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기도 했다. 그는 미셸 메지 감독과 만나면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꾸며 상대 수비수들을 안심시켰다.
By 히든 K 류청 편집장
류청 기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스포츠 전문 미디어 히든 K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여행과 문화 등 축구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책 <사람은 축구를 공부하게 만든다>,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월드컵 축구 엠블럼 사전>, <박태하와 연변축구 4년의 기적>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