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프랑스 고성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 계기가 된 보르비콩트 성(Château de Vaux-Le-Vicomte)이다. 질투에서 탄생한 예술의 걸작인 보르비콩트 성과 이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살펴보자.
푸케와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위대한 유산
이 성의 주인은 루이 13세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였다. 그는 치밀한 재정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루이 14세조차 질투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특히 예술을 사랑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자신의 곁에 두었다. 루이 14세도 문화와 예술에 열정적이었으나, 그가 불러도 오지 않던 콧대 높던 예술가들이 푸케 곁을 지키자 더욱 큰 질투심을 느꼈다고 한다.
루이 14세 때의 시기를 프랑스인들은 ‘라 그랑 시에클(La Grand Siécle)’이라 지칭한다. 직역하면 큰 시대, 위대한 시절이라는 뜻으로 프랑스가 유럽의 문화,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17세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3대 예술가가 있다. 건축가의 이름은 루이 르 보(Louis le Vaux), 화가는 샤를 르 브랑(Charle le Brun), 정원사는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otre)이다. 이 세 명의 예술가가 모여 니콜라 푸케를 위해 만들었던 성이 바로 보르비콩트이다.
루이 14세의 질투: 푸케의 몰락과 베르사유의 탄생
이렇게 만들어진 성을 보았던 루이 14세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질투심에 불타며 결국 푸케를 무너트리려 한다. 루이 14세가 푸케에게 보르비콩트 성에서의 연회를 요청했고 1661년 8월 17일, 루이 14세가 이 성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더 자신의 눈으로 푸케의 능력을 확인한 루이 14세는 그로부터 3주 뒤 푸케를 체포하고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보르비콩트 성을 만들었던 세 명의 예술가들에게 더 웅장하고 화려한 성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이다.
보르비콩트 성의 유산을 이어가는 현재의 주인들
오늘날 보르비콩트 성은 소미에(Sommier) 가문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유산인 성을 보존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유지하고 있다.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촛불 축제(Les Soirées de Chandelles)는 약 2,000개의 초로 정원과 성을 밝혀 루이 14세가 참석했던 1661년 연회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보르비콩트 성, 역사의 무대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다
연말이 되면 성은 크리스마스의 마법 같은 장식으로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약 12,000개의 오브제와 4,000개의 꽃장식, 180개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성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며, 외부 벽면에는 조명을 활용한 일루미네이션이 펼쳐진다. 벽난로에서 실제로 나무를 태워 따뜻함을 더한 내부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방문객들을 매료시킨다.
올해는 보르비콩트 성의 정원에 처음으로 아이스링크장이 설치됐다. 단 5유로로 고성을 배경 삼아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보물찾기, 마시멜로 굽기, 연극, 지하 탐험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어 온 가족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작가 노먼 빈센트 필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가 세상에 마법의 지팡이를 흔드니, 보라, 모든 것은 더욱 부드러워졌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크리스마스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특별하다. 마치 순수했던 나의 어린 시절로 순간 이동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부리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을 보르비콩트 성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By 정희태 가이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