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부터 발자크까지, 위인을 따라가는 파리 박물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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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문화 & 유산도시

Clément Dorval
© Clément Dorval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19 3월 2025

문학, 물리학,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파리는 세계적인 명사들이 생활해 온 메트로폴리탄이다. 지금은 유명 인사들이 세상을 떠난 뒤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과 삶의 흔적들은 이제 박물관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전세계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대형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작은 박물관 중에서도 역사적 위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명사들의 집을 탐방해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 할 수 있다.

퀴리 박물관 (Musée Curie)

1 Rue Pierre et Marie Curie, Paris, France

Musée Curie
© Musée Curie

우리에게는 ‘마리 퀴리’로 익숙한 폴란드 출신의 여성 과학자.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로 어릴 적 위인전으로 접해 본 이름일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며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1867년 바르샤바에서 교육자 집안의 1남 4녀로 태어나 러시아의 지배를 피해 둘째 언니와 형부의 돌봄을 받으며 파리로 이주했다. 이후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고 1895년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했다.

피에르 퀴리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돕던 마리가 과학자의 자질을 갖추었음을 발견했다. 그는 아내의 학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자전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로맨틱한 남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면서 핵물질에 노출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피에르 퀴리는 짐마차에 치여 사망했고, 마리 퀴리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마리 퀴리는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과도한 방사선에 피폭되어 골수암과 백혈병 등을 앓다가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 퀴리는 파리의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는 팡테옹에 여성 최초로 안장되었다.

Uriel Chantraine  Musée Curie
© Uriel Chantraine Musée Curie

과거 라듐 연구소 건물 중 한 곳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본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1914년부터 1934년까지 사용된 마리 퀴리의 사무실과 화학 실험실, 라듐 연구소 정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녀는 많은 연구 프로젝트에 사용된 라듐과 폴로늄과 같은 희귀한 방사성 물질을 얻고자 이곳에서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했다. 지금의 박물관은 국립 암 투병 협회의 기부금으로 재건되었으며 마리 퀴리가 입던 블라우스를 비롯하여 방사능 탐지, 관찰, 측정장치, 1천여 개가 넘는 의료 및 가정용품이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고 있다. 

 

자드킨 미술관 (Musée Zadkine)

100bis Rue d'Assas, Paris, France

Paris, musée Zadkine
© Paris, musée Zadkine

러시아 출신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그림과 석판 인쇄물을 만들기도 했던 아티스트,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의 작품을 전시하는 파리 6구의 작은 미술관은 1982년에 문을 열었다. 자드킨은 러시아 태생이지만, 알제리 출신 화가 발렌틴 프락스와 40여 년간 함께 살았으며, 그들의 거처이자 작업실이었던 이 공간은 이후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두 명의 이방인은 주로 프랑스에서 생활했으며, 생을 마친 곳도 프랑스였다.

자드킨은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과 교류하면서 회화에서 전전하고 있던 원칙을 조각에서 부연했으며 이후 프랑스 큐비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약했다. 작품 초기에는 인간과 식물의 융합’은 그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였으며 점차 기하학적 형태와 구조에 중점을 두면서 단순화와 해체를 시도했다. 1961년 오베르에 세워진 반 고흐 기념비를 비롯하여 생애 마지막에는 아라베스크와 얽힘의 네트워크라는 추상적 형태의 새로운 길을 걸으며 593점의 조각 작품을 남겼다.

이 공간은 자드킨의 부인이 남편의 작품과 작업실을 파리 시에 기증하면서 문을 열었다. 300여 점의 조각품 중에 대표작인 <파괴된 도시를 위한 기념비>의 모형이 여기에 보관돼 있으며 조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작했던 스케치와 사진, 그림 등이 보관돼 있다. 

 

빅토르 위고 저택 (Musée Victor Hugo)

6 Place des Vosges, Paris, France

maison vitor hugo
© maison vitor hugo

1901년 빅토르 위고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폴 뫼리스는 시인의 손자인 조르주와 잔,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 앨리스 록로이와 협의해 세익스피어, 단테, 괴테 하우스와 같은 박물관을 만들자고 파리 시에 제안했다. 당시 이곳은 시 소유의 건물이었으며 1832년부터 1848년까지는 빅토르 위고가 살던 거처였다. 빅토르 위고는 1832년에 아내와 네 자녀를 데리고 이 저택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에게 백작 작위를 받은 장군의 아들답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고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나오는 인세 덕분에 30세의 어린 나이에 보주 광장에 보금자리를 정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6년 후 프랑스는 갑작스러운 물가 폭등과 실업률 급등으로 혼란에 빠졌고, 결국 폭동이 일어났다. 국왕 루이 필리프는 왕위를 내려놓고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빅토르 위고는 처음에는 루이 보나파르트를 지지했지만, 그가 종신 대통령이 되자 강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위고는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채널 제도의 저지섬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 정부는 그의 가구, 책, 개인 소장품을 모두 경매에 부쳤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실각한 1871년, 위고는 19년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파리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 박물관에는 그의 서재와 침실, 중국 살롱이 재현되어 있으며, 생전에 사용했던 가구와 예술 작품, 태피스트리, 가족과 친구의 초상화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방에는 1885년 5월 22일, 그가 세상을 떠난 방에서 가져온 침대가 자리하고 있다.

 

발자크의 집 (Maison de Balzac)

47 Rue Raynouard, Paris, France

Guillaume Bontemps  ville de Paris
© Guillaume Bontemps ville de Paris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데 빛나고 심오하다고 극찬했던 발자크는 1799년 5월 20일에 태어났다. 발자크는 15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사해 소르본 대학에 진학, 법학을 공부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작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적은 수입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가 하면, 대출까지 받아 인쇄소와 출판사를 차렸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엄청난 빚을 지고 월세마저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평생 빚쟁이에 시달렸다. 

발자크는 하루 16시간 일하는 ‘워커 홀릭’으로 주로 밤에 작업했다. 그는 작업을 할 때 수도복을 입고 커피 주전자를 놓아두는 독특한 습관으로도 유명했다. 1829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한 그는 90여 편에 달하는 소설을 시리즈 형태로 묶은 주인공만 2천 명 넘게 등장하는 <인간 희극>을 통해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51세의 짧은 생애 동안 100편이 넘는 소설을 썼다. 그는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리를 관찰했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일을 즐겼다. 

Raphaël ChipaultParis Musées
© Raphaël ChipaultParis Musées

현재 파리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16구에 위치한 발자크의 집은,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이 살던 시골 마을이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16번이나 이사를 하던 그는 숨은 뒷문이 있는 이 집을 정착지로 삼았다. 이는 위급할 때 빠르게 탈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 집은 1948년 파리 시에서 매입해 작은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박물관에는 그가 글을 썼던 책상과 유명한 커피 주전자, 금시계와 멜빵, 순금과 터키옥 장식의 지팡이, 교정쇄, 편지, 계산서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에펠탑이 보이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카페에서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발자크의 삶을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By <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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