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뜨거웠던 파리 하계 올림픽이 마무리되었다. 100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열린 올림픽은 그야말로 전 세계인의 축제로, 화합을 다지는 자리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올림픽 개막식은 많은 반응을 끌어냈다. 파리 패럴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파리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가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되돌아본다.
이번 올림픽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파리다운 올림픽이었다. 베르사유 정원에서 펼쳐진 승마와 근대 5종 경기,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군사박물관 앵발리드를 배경으로 한 양궁, 에펠탑을 배경으로 열린 비치발리볼, 그리고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던 그랑팔레에서 진행된 태권도와 펜싱 경기까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파리의 정수를 담은 올림픽 개막식
그중에서도 많은 이슈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올림픽 개막식이었다.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배를 타고 등장하며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공영방송 해설자들은 그를 유령(fantôme)이라 표현했다. 바로 1910년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가 발표한 소설 오페라의 유령 속 그 유령이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소설의 주인공이 프랑스에서 유래된 파쿠르를 통해 성화를 들고 파리 도심을 질주하며, 상징적인 건축물들과 더불어 프랑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출했다. 이렇듯 개막식의 모든 요소들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프랑스가 가진 모든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한정된 공간인 스타디움이 아닌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개막식이 진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시도였다. 100여 년 동안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개막식의 큰 틀을 깨뜨린 이번 개막식은, 마치 500여 년 동안 동일한 예술만을 추구하던 시대에 메시지를 던지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갔던 인상파 화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총 12개의 큰 주제로 나뉘어 준비된 개막식은 '반갑습니다(Enchanté)'라는 글씨가 화면을 채우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의 연주와 함께 물랑루즈에서 초연되었던 캉캉 춤을 추는 무용수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모습이 비춰지며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 자부심
개막식 공연은 프랑스 혁명 시절 감옥으로 쓰였던 콩시에르주리를 지나며,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일어난 나라로, 이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혁명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그림 속 여인은 마리안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개막식 때 메조 소프라노인 악셍 생 시렐(Axelle Saint Cirel)이 같은 복장을 하고 그랑팔레 건물 위에서 국가를 불렀으며, 마리안느가 쓰고 있는 붉은색 모자인 프리기아 모자에서 이번 올림픽 마스코트 프리주가 나왔다. 또한 마라톤 코스는 혁명 당시 파리의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으로 행진했던 1789년 10월 5일의 행진을 기리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러한 상징성만으로도 프랑스인들이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예술로 보여준 다양성과 화합의 메세지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표현했다는 해석이었다.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나는 프랑스의 입장에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3대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현재 프랑스는 이 3대 이념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어 하는데, 라이시떼(Laïcité), 즉 세속주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종교의 부패로 인해 프랑스 내에서 종교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프랑스를 기독교의 맏딸이라 부르지만, 집을 나간 맏딸이라고도 표현한다. 프랑스는 인종부터 성 정체성까지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전 파리 시장이었던 베르트랑 델라노에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으며,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아이들의 입양을 합법화한 14번째 나라가 프랑스다. 이처럼 그들의 생각을 여지없이 드러낸 개막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조롱으로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생각과 견해를 공유함으로써 함께 고민해 볼 것을 세상에 제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양성을 외치며 인정하자고 말하지만, 이면의 다른 모습을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19세기 조각의 거장 로댕은 이렇게 말했다.
“소묘에 있어 검은색과 하얀색이 다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삶도 심미적인 면에서 선과 악의 조화가 필요하다. 슬픔이라고 하여 함부로 내다 버리지 말도록 하자. 인간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눈부시게 빛나는 기쁨처럼 슬픔 역시 우리의 삶을 이루는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술가들의 삶과 모습을 보면 괴짜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흔들고 변화시키며 발전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세상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지금, 그 모습을 조금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예술의 나라 프랑스다운 방식으로 다양성의 공존과 이해를 통해 세계인이 화합된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뜨거웠던 2024년 파리의 열기가 2028년 LA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By 정희태 가이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