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가을을 즐기기에 유명 전시회를 돌아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코끝을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평소 아끼거나 사랑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 파리이다. 피카소와 그의 첫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특별한 교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특별 전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그의 그림을 세상에 알리는 데 공헌한 갤러리스트 기욤의 관계를 조명한 특별 전시 , 그리고 자살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러시아 태생의 화가 니콜라 드 스탈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는 것은 문화의 도시 파리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이를 누릴 수 있는 여행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파블로 피카소> 특별전 @뤽상부르 박물관 Musée du Luxembourg
2023년 9월 13일 ~ 2024년 1월 28일
펜실베니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1903년 파리에 정착했다. 재치 있는 유머와 따뜻한 성격을 갖춘 그녀는 파리에 살면서 헤밍웨이를 비롯해 브라크, 피카소, 폴 세잔, 장 콕토와 같은 작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미술 컬렉터로서 많은 작가의 작품을 모았는데 특히 피카소의 첫 후원자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외국인으로서 파리에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소외감을 보헤미안적인 정서와 예술적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서로에게 기운을 북돋우며 함께 극복해 나갔다. 그 결과 피카소는 입체파의 창시자로, 거트루드는 문학계 아방가르드를 구체화하는 거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친분을 쌓아온 두 사람이 더욱 유대감이 깊어진 것은 피카소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인데 기억에 남는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90번이나 포즈를 바꾸게 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화가의 열정에 감탄했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특별히 애정했던 피카소의 작품을 비롯하여 브라크, 샤갈과 같은 개인 소장품과 만날 수 있지만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듀오 전시란 컨셉에 맞춰 거트루드 스타인의 예술적 생애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포스트 모던 댄스 안무가인 이본 라이너나 루신다 차일즈의 인물이 등장하는 영상이나 존 케이지, 네오다다인 머스 커닝햄의 음악을 통해 196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예술에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이 함께 소개된다. 우리에게 반가운 이름이자 현대 미술에 큰 반향을 일으킨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도 화제가 되고 있다. 형태와 물질성의 유희, 콜라주의 미학, 연극에 대한 분석적 시각 등 두 사람이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는 이 신선한 전시는 피카소 사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와 그의 아트딜러> 특별전 @오랑주리 미술관 Musée de l’Orangerie
2023년 9월 20일 ~ 2024년 1월 15일
이탈리아 출신의 유대인 모딜리아니는 1906년 파리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와의 만남 이후 하나의 계시처럼 미친 듯이 조각에 몰두했다. 이후 그가 다시 회화로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상인, 폴 기욤과의 만남 이후이다. 기욤은 화가에게 몽마르트의 스튜디오를 얻어주면서 안정적인 생활의 조력자가 되었고 회화 작가로 다시 돌아올 것을 조언했다. 폴 기욤이 모딜리아니를 만난 것은 시인 막스 자코브에 의해서였으며 무명 화가였던 모딜리아니는 기욤의 노력 덕분에 파리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1920년대 프랑스와 미국의 미술 시장에서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주로 폴 기욤에 의해 소개되었고 현재 오랑주리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는 모딜리아니의 그림 5점 중에는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23세의 젊은 상인, 폴 기욤을 그린 초상화 시리즈의 첫 작품이 포함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모딜리아니가 그린 캔버스 100여 점, 드로잉 50여 점, 조각품 10여 점과 만날 수 있다. 화가의 삶에 함께했던 여성들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장 콕토, 막스 자코브에서부터 무명 모델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화가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1910년대 파리의 예술적, 문학적 맥락에서 화가와 그의 딜러 사이의 상징적인 관계를 조명하는 의미에서 마련된 이 전시를 통해 한 화가와 미술 상인의 중요한 만남을 되돌아보고 두 인물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예술가의 경력을 조명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니콜라 드 스탈> 특별전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2023년 9월 15일 ~ 2024년 1월 21일
2003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던 대규모 회고전 이후 20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열리게 된 이번 전시는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공공 및 개인 컬렉션에서 모아 온 니콜라 드 스탈이 작업한 200여 점의 회화, 드로잉, 판화, 습작 노트와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특별히 200여 점의 회화 중 50여 점은 프랑스 박물관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1940년대 첫 번째 구상 단계에서 1955년 요절 직전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2년간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생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과 구상의 구별을 의도적으로 뒤집고 더욱 조밀하고 간결한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는 그림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고독한 예술가의 유일한 표현의 방법이자 탈출구였던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젊은 시절의 여행, 남부 프랑스 보클뤼즈에서의 짧은 여정, 1953년의 시칠리아 여행, 마지막으로 앙티브에서의 마지막 삶을 불태웠던 강렬한 회화의 단계들을 볼 수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고아가 되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로 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의 자서전과 같은 전시이다. “난 나의 그림들을 완성할 힘이 없습니다” 그가 자살 전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이 전시장에 적혀져 있어 작품을 보고 나서 깊은 여운이 남는 전시이다.
By <시크릿 파리 저자> 정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