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전 세계가 가장 탐내는 데스티네이션은 단연 파리가 될 것이라 예언한다. 올림픽과 아트페어 같은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화려한 이벤트들이 이 도시의 한 해를 빈틈없이 채워줄 테니까. 파리로 향하려고 마음먹은 많은 사람 중에는 분명 파리가 처음이 아닌 여행 베테랑도 있을 것. 그렇다면 에펠탑, 루브르, 샹젤리제, 바토 무슈와 같은 클리셰는 졸업할 때다. 좀 더 색다르게 파리의 매력을 즐기고 싶은 당신, 파리에 이미 입문한 적 있는 당신, 또는 좀 더 심화된 ‘넥스트 레벨’의 파리를 만나고 싶은 당신을 위한 몇 가지 신선한 힌트가 여기 있다.
프라고나르 향수 클래스 & 박물관 투어
향수의 나라 프랑스가 보유한 보석 같은 퍼퓸하우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샤넬과 디올, 그리고 각종 니치 향수 브랜드야 이미 익숙하겠지만, 그 모든 역사가 바로 프랑스 남부의 도시 그라스(Grasse)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코코 샤넬이 방문해 ‘샤넬 No.5’를 만든 곳이자 영화 <향수>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곳은 중세 시대부터 향수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여, 이탈리아로부터 온 기술을 통해 향료 제조에 선두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세기에는 화학적 향료의 도입으로 혁신을 이루었고, 19세기에는 세계적인 향수 수도로 발전했으며 20세기 이후에도 향수 산업에서 주요 역할을 했다. 그 이후로도 그라스는 지역 특유의 지리적 조건과 기후 덕분에 다양한 향료 원료를 공급하여 전 세계 향수 산업에 기여하고 있다고. 바로 이 그라스에서 192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프라고나르(Fragonard)’는 그라스를 대표하는 향수 브랜드이자 제조사로, 자체 향수 제조 공장과 더불어 향수 박물관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그라스까지 가지 않아도, 파리 오페라에 위치한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Musée du Parfum Fragonard)’를 방문해 박물관을 구경하고, 워크숍에 참가해 자기만의 향수를 만들어볼 수 있다. 워크숍은 2개 층의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박물관과 아틀리에에서 진행되며, 간단하게 진행되는 40분짜리 미니 워크숍, 또는 향수 제조에 대해 보다 깊이 배워보는 2시간짜리 심화 워크숍을 예약할 수 있다. 모든 워크숍 프로그램은 커스텀 향수 만들기가 끝난 후 향 전문가와 함께하는 박물관 투어를 포함하는데, 19세기 풍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공간 속에서 온갖 진기한 향수 재료에 대해 듣고 아기자기한 향수병들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어 특별하다. 은은한 파리의 매력을 몸에 입혀줄 프라고나르의 다양한 향 스펙트럼을 부티크에서 마음껏 시향해보는 시간까지 넉넉히 누리고, 특별 할인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 것!
제 2의 지베르니, 메종 카유보트와 이에르 마을
예술을 좋아하거나, 자연을 좋아하거나, 하여튼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리에 온 김에 조금만 시간을 더 들여 반드시 둘러볼 곳이 있다. 바로 인상주의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의 집 ‘메종 카유보트(Maison Caillebotte)’. 파리에서 RER을 타면 1시간 내외로 금세 도착하는 근교의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 이에르(Yerres)에 위치한 화가의 집은 2017년 대중에게 문을 열었지만 코로나 시기로 인해 아직까지 붐비지 않는 숨은 보석 같은 관광지다. 제2의 지베르니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의 색과 풍경으로 둘러싸인 메종 카유보트는 19세기 말에 지어졌으며, 카유보트 가문의 예술적인 감수성과 미학적인 관심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카유보트의 개인 수집품과 그림, 미술 작업실, 도서관, 응접실 등을 가까이서 감상하며 당시 한 가족이 살았던 실제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주기적으로 카유보트의 작품뿐 아니라 근현대의 다양한 예술 전시도 기획해 선보이며, 계단 장식부터 문의 문양까지 섬세하고 정교한 복원 과정을 거친 인테리어와 건축도 훌륭한 볼거리다. 특히 카유보트의 정원은 그가 화가로서 수많은 영감을 받은 근원 중 하나로, 한 지역 예술 축제에서 현대 프랑스 예술가들이 설치한 조각과 미술품들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어 그야말로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만날 수 있다. 메종 카유보트의 텃밭도 구경할 수 있는데,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신청을 통해 각종 농작물과 꽃을 기를 수 있는 공유 텃밭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이에르 시가지와 공원을 돌아다니고 로컬 마켓을 구경하는 것도 파리에선 느낄 수 없는 소박하고 프랑스적인 매력을 경험하는 방법! 이에르와 가까운 곳에는 가성비가 꽃피는 쇼핑 스팟인 ‘라발레 빌리지’ 아울렛이 있으니, 파리를 벗어나 예술과 쇼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는 하루를 보내보자.
원조 ‘몽쥬 약국'에서 요즘 사야 할 것은?
파리에 들른 관광객도, 파리에 사는 유학생도, 참새 방앗간처럼 꼭 들른다는 그곳. 바로 6구에 위치한 ‘몽쥬 약국(Pharmacie Monge)’이다. 꼬달리, 유리아쥬, 눅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코스메틱 제품을 엄청난 가성비로 살 수 있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작은 약국은 이젠 하나의 명소나 다름없다. (참고로 파리 다른 지역에 있는 ‘몽쥬’ 약국은 엄밀히 말해 이름만 공유하는 곳이기에 6구에 있는 ‘몽쥬 약국’이 유일한 원조라는 현지 팁도 전한다.) 여전히 유효한 가격경쟁력은 물론, 이미 알려진 대형 브랜드 외에도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로컬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는 창구로도 기능하는 몽쥬 약국. 몇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유통구조로 인해 대다수의 제품을 한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는 데 무리가 없어지긴 했지만, 몽쥬 약국이 발빠르게 소개하는 흥미로운 브랜드와 베스트 아이템들은 나날이 새로운 인사이트로 수집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흔히 만나는 그런 브랜드 말고, 몽쥬 약국의 세일즈 디렉터가 직접 추천한 요즘의 필수 구매템을 몇 가지 알아 왔다.
보토(Botot) 치약: 1756년, 루이 15세를 위해 프랑스의 왕궁 약사인 에드메 프랑수아 줄리앙 보토(Edme-François-Julien Botot)가 만든 구강청결제를 치약으로 만든 것. 흥미로운 역사만큼이나 독특한 향과 천연오일로 구성된 치약계의 새로운 명품이다.
파니에 데 성스(Panier des Sens) 핸드크림: 프로방스의 심장부에서 2001년에 태어난 이 브랜드는 지중해의 노하우를 가득 담은 프래그런스 제품들을 선보인다. 자연성분과 진정성있는 제품력, 그리고 낭만적인 패키지 디자인으로 이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님(Nym) 세럼 압솔뤼: 인도 아대륙에 자생하는 ‘님(neem) 나무’의 열매와 씨앗에서 추출한 식물성 오일인 님 오일. 곰팡이나 해충을 퇴치하는데 효과적인 천연오일로, 이 세럼은 님 오일 추출물을 4% 함유해 항염효과와 보습에 탁월하다. 만능 세럼으로 통하며 요즘 국적을 불문한 고객들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더모필(Dermophil) 립밤: 실험실에서의 오랜 연구 끝에 입술과 손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한 더모필. 유난히 건조한 입술이 고민이거나, 한국의 매서운 겨울 또는 불타는 여름으로부터 입술을 보호하고 싶다면 이 제품을 추천한다. 다양한 향과 성분의 립밤 라인이 있지만, 극건조용 오리지널 립밤의 효과가 아주 톡톡하다고.
진정한 파리지앵이 되는 곳, 도서관
여행객이라고 해서 반드시 많은 돈을 써가며 럭셔리한 스팟들을 돌아다니란 법은 없다. 유럽 인문학과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가장 로컬하고도 접근성이 좋은 공공시설인 도서관은 이미 파리지엔과 파리지앵들의 일상 그 자체. 우리가 한국에서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듯, 파리에선 공부와 작업을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대개 도서관은 입장이 무료이거나,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도서관 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건축물의 아름다운 열람실, 옛날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금박 표지의 고서적, 돔 천장에 수 놓인 그림, 오래된 테이블과 램프에서 풍기는 마법 같은 분위기… 돈이 없어도 마음의 양식을 얼마든지 풍요롭게 채울 수 있는 파리의 도서관에 들러 몇 시간의 고요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 (Bibliothèque Sainte-Geneviève) : 19세기 초에 개관해 프랑스 혁명 이후 국립 도서관으로 전환된 이곳은 네오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유명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미디어 도서관 (Médiathèque Marguerite Duras) : 책뿐만 아니라 오디오북, 비디오, 음악 등의 다양한 매체를 열람할 수 있는 신생 도서관.
시청 도서관 (Bibliothèque de l'Hôtel de Ville) : 1871년에 개관한, 시청 광장에 있는 작지만 조용하고 분위기있는 도서관. 열람실 외에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되어있다.
아메리칸 라이브러리 인 파리 (American Library in Paris) : 영어권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도서관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영미권 도서관이라고. 문학 작품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문학 행사나 워크샵도 자주 개최된다.
리슐리외 국립도서관 (Bibliothèque Nationale Richelieu) : 17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도서관으로, 높다란 돔 아래 열람실이 펼쳐진 아름다운 건축물이 인상적. 아이들과 어른들이 조용하게 책을 읽는 흐뭇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예술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 볼거리도 풍성하다.
By 양민정 Min-jong Noelle YANG
Freelance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