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프랑스 미니시리즈 < Vortex >를 보다가 웃음이 났다. 이 미니시리즈가 배경으로 한 도시 때문이다. 아름다운 바닷가와 절벽을 지닌 이 도시는 프랑스 브르타뉴에 있는 작은 도시 브레스트다. 브레스트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은근히 낯익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리그앙 소속인 스타드 브레스투아 29 덕분이다. 스타드 브레스투아 29는 작지만 만만치 않은 팀이다.
연고지, 브레스트
프랑스 서부지역은 켈트족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브르타뉴는 브르타뉴어를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지역색이 강하다. 브레스트가 처음으로 역사책에 등장했을 때, 그 이름은 브레스타(Bresta)였다. 이는 켈트어로 언덕을 뜻하는 brigs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브레스트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과거에는 “브레스트의 영주가 아닌 이는 브르타뉴 공작이 될 수 없다”라는 표현도 있었다. 브레스트는 이후에도 프랑스 해군의 본부로 쓰이기도 했다.
1950년에 다시 태어나
스타드 브레스투아 29는 1950년에 창단했다. 이 팀은 그냥 허허벌판에서 일어선 게 아니다. 1903년부터 같은 지역을 연고로 경기했던 라르모리캔 드 브레스트(l'Armoricaine de Brest) 등 다섯 개 지역 클럽(l'Armoricaine de Saint-Louis, l'Avenir de Saint-Martin, la Flamme du Pilier Rouge, la Milice de Saint-Michel et les Jeunes de Saint-Marc)을 연합해 만든 팀이다. 가장 중심이 된 라르모리캔 드 브레스트는 Pen Huel(브르타뉴어로 ‘머리를 높이 들라’)을 모토로 여러 스포츠 종목을 망라한 팀을 가지고 있었다.
재정 악화로 파산
지역의 자부심이었던 스타드 브레스투아 29는 1980년대 후반에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했다. 다비 지놀라, 스테반 기바르슈(1998 월드컵 우승멤버), 폴 르 구엥 등 굵직한 선수와 함께 나름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1991년 팀 재정이 악화되면서 2부에서 4부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성난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해 12월에 팀은 1억 5천만 프랑으로 추정되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 결국 프로팀은 해체됐고, 선수들을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부활
아마추어 무대로 떨어진 스타드 브레스투아 29는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에야 다시 프로 무대로 복귀한다. 3부 리그에서 2부리그로 승격하면서 다시 한번 최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든다. 당시 팀에는 어린 프랑크 리베리도 있었다. 스타드 브레스투아 29는 2009-10시즌에 드디어 꿈을 이룬다. 알렉스 뒤퐁 감독이 이끄는 팀은 2부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리그앙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29의 의미
스타드 브레스투아 뒤에 붙는 숫자 29는 무슨 의미일까? 브레스트는 브르타뉴 지역 피니스테르 주에 속한 도시인데, 피니스테르 주의 번호가 29이다. 팀은 이 숫자를 1992년부터 팀 엠블럼에 넣었다. 현재 엠블럼은 빨간 방패 안에 흰 색으로 스타드 브레스투아 29의 이니셜을 딴 SB29이 들어가 있다. 그 위에 있는 일종의 ‘별 모양’은 브르타뉴 지방을 상징하는 동물인 북방족제비 에르민(Hermine)이다.
By 히든 K 류청 편집장
류청 기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스포츠 전문 미디어 히든 K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여행과 문화 등 축구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책 <사람은 축구를 공부하게 만든다>,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월드컵 축구 엠블럼 사전>, <박태하와 연변축구 4년의 기적>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