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조선업 도시의 예술적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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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곽서희
© 곽서희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30 9월 2022

다시 만난 프랑스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누비고 다닌 '트래비' 기자의 마지막 도시는 바로 낭트.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도시가 선박 경기 침체로 단숨에 '고담 시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노력으로 예술의 도시로 변신했다. 초록색 선으로 이어진 예술 도시, 낭트에 대해 알아보자.

초록 선으로 예술을 엮다

초록 선이 이끈 브르타뉴 공작 성
© 곽서희 - 초록 선이 이끈 브르타뉴 공작 성

낭트가 처음이라면 바닥을 봐야 한다. 가이드북은 필요 없다. 길 위에 그려진 그린 라인(Green Line)을 따라 걷기만 하면 반은 성공이다. 이 선의 정체는 낭트의 ‘관광 로드맵’. 20km에 걸쳐 브르타뉴 공작 성(Castle of the Dukes of Brittany)을 비롯한 유적지, 쇼핑몰, 상점 등 낭트의 42개 스폿을 하나로 연결하는 선이다. 그냥 웬만한 명소들은 다 지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낭트에선 두 가지만 기억하자. 길을 잃었다? 초록 선을 찾을 것. 어딜 갈지 모르겠다? 초록 선을 따라갈 것. 그럼 셀프 가이드 워킹 투어는 저절로 완성이다.

버려진 도시에서 예술의 도시로

유난히 해가 들던 오후, 골목 어귀의 작은 카페에서
© 곽서희 - 유난히 해가 들던 오후, 골목 어귀의 작은 카페에서

지금 낭트는 ‘물 들어오는’ 중이다. 발걸음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밀물처럼 낭트로 밀려오고 있고, 근래엔 인구도 매년 1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으니. 19세기만 해도 조선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낭트는 1987년에 마지막 남은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유럽의 선박 경기 침체 등이 원인이었다. 근로자들은 실직했고 도시는 버려졌다. 조선소 밀집지였던 시 중심부는 ‘고담 시티’가 됐다.

낭트의 보타니컬 가든 호수에선 조각품도 휴식을 취한다.
© 곽서희 - 낭트의 보타니컬 가든 호수에선 조각품도 휴식을 취한다.

위기에 빠진 낭트시를 구원한 건, 바로 예술!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걸쳐 펼쳐진 예술축제 ‘레잘뤼메(Les Allumees)’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낭트는 30년간 문화 발전에 과감히 투자했다. 물 들어올 때 저은 노는 도시를 부활시켰다. 예술가, 건축가, 조경 정원사, 시인 등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낭트에 모여 상상력을 불태웠고, 텅 빈 비스킷 공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나나 공장은 갤러리 카페로 변모했다. 그렇게 낭트는 도시재생의 전형이 됐다.

숨 쉬듯 곁에 있는 예술 작품

햇빛에 따끈하게 데워진 루아르 강변의 풍경
© 곽서희 - 햇빛에 따끈하게 데워진 루아르 강변의 풍경

초록 선을 따라 걷는다. 선은 명소뿐 아니라 낭트의 예술도 엮는다. 낭트에선 길 위에 예술이 있다. 공원 호수에 조각품이 누워 있는가 하면 건물 앞마당에 설치미술품이 널브러져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이라는 듯.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다. 120점 이상의 공공 예술 작품은 도심 전체에 설탕처럼 흩뿌려져 낭트를 더 달콤하게 만든다. 낭트에서 예술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 곁에 숨 쉬며 살아가는 ‘일상’이다. 한계 없는 예술, 그게 곧 낭트의 정체성이었다.

낭트의 움직이는 성

폐공장에 나뒹굴던 부품들은 예술가들에 의해 '기계 섬'으로 재탄생했다
© 곽서희 - 폐공장에 나뒹굴던 부품들은 예술가들에 의해 '기계 섬'으로 재탄생했다

방심한 새 흠뻑 젖었다. 이런, 살다 살다 코끼리 코로 물벼락을 맞아 보다니. 젖은 옷을 말리는데 카멜레온이 인사하고 나무늘보가 손짓한다. 머리 위론 새가 날아든다. 동물원이 아니다. 낭트의 ‘기계 섬(Les Machines de l’ile)’ 얘기다. 2007년, 버려졌던 폐조선소는 기계 동물 테마파크로 변신했다. 공장에 방치돼 있던 부품들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동물과 나무, 대초원 등으로 탄생했다.

자이언트 코끼리

진격의 자이언트 코끼리,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 곽서희 - 진격의 자이언트 코끼리,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기계 동물들 중 제일 인기 있는 녀석은 ‘자이언트 코끼리(Le Grand Elephant)’다. 기계 섬을 먹여 살린 장본인인 건 알겠다만, 솔직히 첫인상은 좀 해괴망측하다. 40톤의 철근과 목재로 만들어진 대형 코끼리가 다리에 동력 공급 기어를 달고 삐걱이며 걸어오는데,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다. 낯설고 충격적이다. 둘은 여러모로 닮기도 했다. 둘 다 고철로 만들어졌고, 탑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코끼리는 높이만 12m다. 아파트 4층 높이쯤 되려나. 최대 50명까지 탈 수 있는 코끼리 등에선 루아르(Loire)강과 낭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격은 한화로 겨우 1만원이 조금 넘으니, 한 번 체험해 봐도 밑질 건 없겠다. 진격의 코끼리는 루아르 강변으로 향한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도시

곽서희
© 곽서희

야외로 나오니 기계 섬 바깥도 온통 놀이터다. ‘저게 뭐지?’ 싶으면 높은 확률로 아트 피스다. 해양 회전목마와 대형 크레인, 19세기 배를 건조할 때 썼던 도르래까지. 몰락한 과거의 조각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니 예술이 된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결코 마구잡이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는 게 느껴져 마음이 든든해진다. 강변에 봄바람이 분다. 트램펄린 위로 아이들이 하늘을 난다. 대형 조각품 곁으로 소년의 보드가 질주한다. ‘도시를 재밌는 아트 플레이그라운드로 만들고 싶었다’는 낭트시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2027년에 기계 섬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완수할 예정이다. 35m 높이의 금속으로 된 나무 주위를 두 마리의 철조 왜가리가 순환 비행하는 작품이 나온단다. 그즈음 또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이 낭트를 뒤덮을지는 내 상상력 밖의 일이다.

📌 낭트 추천 호텔

맨션 드 몽드 호텔 앤 스위트(Maisons du Monde Hotel & Suite Nantes) 2 bis Rue Santeuil, 44000 Nantes

위치만으로도 일단 100점이다. 낭트 시내 중심에 있고 주변에 쇼핑몰, 맛집, 카페 등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쇼핑하다 두 손이 무거워지면 언제든 방에 짐을 던져 놓고 빈손으로 나올 수 있다.

By Travie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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