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집’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릴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시 크루아(Croix)에서 어렴풋이 꿈꾸던 집을 구체화한 이상향을 발견했다. 20세기 초에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로베르 말레 스테방(Robert Mallet-Stevens)이 설계한 저택, 빌라 카브루아(Villa Cavrois)다. 이 집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미술 잡지를 발행하고 아트 디렉터로서 영화 의상과 세트를 총괄하는 등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한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걸작이다. 그래서 건축물과 정원뿐 아니라 가구와 장식 등 세부적인 인테리어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카브루아의 삶이 녹아든 건축 요소
섬유 사업가인 폴 카브루아는 자신의 공장에서 멀지 않은 데다 환경이 쾌적한 교외에 저택을 짓고자 1929년 로베르에게 건축을 의뢰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여정이 로베르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상앗빛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은 그들이 방문했던 네덜란드 북부의 힐베르숨(Hilversum) 시청사와 유사하다.
“곧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외관에서 유일하게 원통형인 요소가 눈에 띌 거예요. 관제탑과 비슷하죠?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로베르의 경험이 반영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빌라 맞은 편에 있는 정원의 ‘물의 거울(The water mirror)’도 마치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처럼 뻗어 있습니다.” 빌라 카브루아의 가이드가 설명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가들 은 집에서도 일상적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기능성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곳의 수영장이다.
일상의 배려한 따뜻한 공간
이윽고 저택으로 들어가 관람 동선을 따라 주방 안에서 가이드의 해설이 이어진다. “통창으로 정원이 보이는 부엌의 채광이 참 좋죠? 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해요. 어른들과 아이들의 식당이 나뉘어 있고, 아이들이 정원에서 맘껏 뛰놀다가 식사하러 들어올 수 있도록 따로 작은 문이 나있었어요.” 빌라 카브루아는 반듯한 선으로 단장했지만,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을 모두 고려하여 세심하게 설계된 면면은 지극히 따스하다.
시대를 앞서간 내부 시설
대저택에는 당시 고급 주택에서도 보기 드문 편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벽면에 마치 배의 동그란 현창처럼 생긴 것은 오디오 스피커로 거실뿐 아니라 여러 방에 설치되었다. 옥상에는 테라스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운반 하는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세 개의 수 전에서는 각각 온수와 냉수 그리고 음용과 요리를 위한 연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지하에는 세탁실뿐 아니라 건조기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고.
완벽했던 집, 폐허에서 복원되기까지
내게는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집이지만, 이곳에 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폴 카브루아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을 팔았다. 이후 방치되며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프랑스 정부에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에 나섰다. 경매에 넘어갔던 가구와 장식품 등을 사들이고, 다시 구할 수 없는 것은 새로 제작한 후 최대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1932년 건축 직후 찍어둔 사진을 참고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방은 의도적으로 폐허였던 모습을 남겨 두었는데, 복원에 들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빌라 카브루아는 거의 100년 전에 설계되었지만, 감각적인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되레 생동한다.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불후의 명작이 아닐까. 대저택이라 난방비가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한 가족의 추억이 배어 있는 포근한 집이자 건축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누군가에게는 살고 싶은 집으로 간직된다.
💌 TIP
빌라 카브루아의 입장권은 11유로(약 1만 6000원)이며 가이드 투어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영어로 진행된다. 유효한 릴 시티 패스가 있다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By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코리아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