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도시 크루아에서 만나는 모더니즘 저택의 정수, 빌라 카브루아

프랑스 북부로 떠나는 여행💌

오드프랑스문화 & 유산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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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G STUDIO_kimeunju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2 12월 2024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릴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시 크루아(Croix)에서 어렴풋이 꿈꾸던 집을 구체화한 이상향을 발견했다. 20세기 초에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로베르 말레 스테방(Robert Mallet-Stevens)이 설계한 저택, 빌라 카브루아(Villa Cavrois)다. 이 집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미술 잡지를 발행하고 아트 디렉터로서 영화 의상과 세트를 총괄하는 등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한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걸작이다. 그래서 건축물과 정원뿐 아니라 가구와 장식 등 세부적인 인테리어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카브루아의 삶이 녹아든 건축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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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사업가인 폴 카브루아는 자신의 공장에서 멀지 않은 데다 환경이 쾌적한 교외에 저택을 짓고자 1929년 로베르에게 건축을 의뢰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여정이 로베르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상앗빛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은 그들이 방문했던 네덜란드 북부의 힐베르숨(Hilversum) 시청사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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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외관에서 유일하게 원통형인 요소가 눈에 띌 거예요. 관제탑과 비슷하죠?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로베르의 경험이 반영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빌라 맞은 편에 있는 정원의 ‘물의 거울(The water mirror)’도 마치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처럼 뻗어 있습니다.” 빌라 카브루아의 가이드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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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가들 은 집에서도 일상적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기능성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곳의 수영장이다.

일상의 배려한 따뜻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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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저택으로 들어가 관람 동선을 따라 주방 안에서 가이드의 해설이 이어진다. “통창으로 정원이 보이는 부엌의 채광이 참 좋죠? 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해요. 어른들과 아이들의 식당이 나뉘어 있고, 아이들이 정원에서 맘껏 뛰놀다가 식사하러 들어올 수 있도록 따로 작은 문이 나있었어요.” 빌라 카브루아는 반듯한 선으로 단장했지만,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을 모두 고려하여 세심하게 설계된 면면은 지극히 따스하다.

시대를 앞서간 내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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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택에는 당시 고급 주택에서도 보기 드문 편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벽면에 마치 배의 동그란 현창처럼 생긴 것은 오디오 스피커로 거실뿐 아니라 여러 방에 설치되었다. 옥상에는 테라스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운반 하는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세 개의 수 전에서는 각각 온수와 냉수 그리고 음용과 요리를 위한 연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지하에는 세탁실뿐 아니라 건조기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고.

완벽했던 집, 폐허에서 복원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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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집이지만, 이곳에 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폴 카브루아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을 팔았다. 이후 방치되며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프랑스 정부에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에 나섰다. 경매에 넘어갔던 가구와 장식품 등을 사들이고, 다시 구할 수 없는 것은 새로 제작한 후 최대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1932년 건축 직후 찍어둔 사진을 참고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방은 의도적으로 폐허였던 모습을 남겨 두었는데, 복원에 들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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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카브루아는 거의 100년 전에 설계되었지만, 감각적인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되레 생동한다.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불후의 명작이 아닐까. 대저택이라 난방비가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한 가족의 추억이 배어 있는 포근한 집이자 건축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누군가에게는 살고 싶은 집으로 간직된다.

💌 TIP

빌라 카브루아의 입장권은 11유로(약 1만 6000원)이며 가이드 투어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영어로 진행된다. 유효한 릴 시티 패스가 있다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By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코리아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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