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이야기에 소주와 막걸리가 빠질 수 없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과거 붉은색 와인은 예수의 피로 여겨져 신성시되었고, 한잔을 주고받으며 나눈 이야기 속에서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다. 오늘날 와인은 단순한 술을 넘어, 또 다른 예술로 이야기되고 있다. 와인을 알게 되면 프랑스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도 와인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로 몽마르트에서 직접 포도를 재배하며 연간 약 1,000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의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스토리는 이 와인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마 클로드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도 이 와인을 마셨을지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이야기다.
프랑스는 현재 거의 전역에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샹파뉴 (Champagne), 부르고뉴 (Bourgogne), 보르도 (Bordeaux)다.
1. 샹파뉴(Champagne)
파리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남짓 이동하면 샹파뉴의 수도 랭스(Reims)에 도착한다. 이곳은 프랑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치러졌던 곳으로 프랑스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곳에서 특별한 와인이 생산되는데, 바로 축배의 술로 불리는 샴페인이다.
흔히 발포성 와인을 모두 샴페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 샹파뉴(Champagne)지역에서 생산된 발포성 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다.
샴페인은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높다. 이는 제조 방식이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샹파뉴 지역의 기후는 일정하지 않아 포도 품질과 와인 품질이 매년 차이가 난다. 따라서 와인 생산자들은 각 해의 와인을 따로 저장해 섞어서 최상의 향과 맛을 만들어 와인 한병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연도마다 와인을 따로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며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또한 퓨피트르(Pupitre)라는 특별한 장치를 이용해 와인을 꽂아 넣고 천천히 병을 돌리며 와인 내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도 추가된다. 이 역시 많은 공간과 시간을 요구하다 보니 제조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샴페인의 가격대가 높이 형성되었으며, 발포성 와인이다 보니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와인으로써의 상징성이 생겨나면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샴페인이다.
샴페인 와이너리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한다. 원하는 샴페인 생산자를 선택하고 날짜와 시간 예약을 하면 쉽게 즐거운 샴페인 투어를 즐길 수 있다.
2. 부르고뉴(Bourgogne)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는 지역이다.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라는 와인은 한 병에 약 3천만 원에 판매되며, 1945년산 로마네 콩티는 약 6억 7천만 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 이 외에도 리슈브르(Richebourg), 라 타슈(La Tache), 샹베르탱(Chambertin), 뮈지니(Musigny), 몽라쉐(Montrachet) 등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설레게 만드는 와인들이 부르고뉴에서 생산된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이 이토록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와인의 품질 역시 중요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희소성이다. 생산량에 비해 소비 수요가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들은 대부분 소규모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며, 포도밭도 작게 쪼개어 나누어 소유한다. 예를 들어, 로마네 콩티는 연간 약 7,000병 정도만 생산되지만, 이 와인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기에 가치는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르고뉴의 행정 수도는 디종(Dijon)이지만, 와인의 수도는 본(Beaune)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진 본은 기차를 타고 약 2시간이 걸린다. 크지 않은 이 도시는 마치 와인이라는 주제로 매일 공연이 열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오크통과 와인병들로 가득한 거리, 포도 내음이 가득한 이 도시는 색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만약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자동차를 렌트해 유명 포도밭들을 직접 방문해 보길 권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포도밭의 풍경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며, 포도밭에서 포도나무 가지에 매달려있는 포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순간으로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면 와이너리 방문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와인 공부를 하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팔 벌려 맞아주던 와이너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많아지고 와이너리의 일손은 부족해졌기 때문에 방문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미리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방문 약속을 꼭 잡고 방문할 것을 권한다.
3.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 지역과 더불어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1855년 만국 박람회 당시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와인 등급 체계를 만들도록 명령했고, 이를 기반으로 보르도의 와인 상 연합회와 상공회의소에서 와이너리의 명성과 전통 그리고 가격대에 따라 총 5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와인 등급 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이 전통이 현재까지 계승되면서 보르도 와인의 가치를 더욱더 드높이게 되었다.
보르도 와인들은 부르고뉴와는 다르게 와인 생산자들의 규모가 훨씬 더 크다. 커다란 샤또(성)에서 주변 농지의 포도들을 이용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부르고뉴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소량씩 생산하지만, 보르도는 한두 가지 종류의 와인만을 집중해 많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두 지역은 와인의 스타일이 매우 다르고,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다.
1980년 프랑스 최고 소믈리에이자 부르고뉴 소믈리에 협회장이기도 했던 나의 와인 스승 조르주 파르튀제(George Pertuiset)에게 수업 시간에 보르도 와인에 대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이렇게 대답하셨다.
“보르도 와인은 보르도 가서 물어봐라. 여긴 부르고뉴니까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질문만 해!”
실제로 보르도 지역에서는 부르고뉴 와인을 보기가 힘들고,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보르도 와인을 보기가 힘들다. 그 정도로 두 지역 와인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며 두 지역 와인의 스타일 또한 너무나 다르다.
보르도 지역은 부르고뉴에 비해 와이너리 방문이 쉬운 편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보통 마케팅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와이너리에 따로 연락해 방문 약속을 잡기가 귀찮다면 보르도 관광 안내소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할 수 있으며,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예약이 가능하다.
19세기 의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파스퇴르는 이렇게 말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담겨있다.”
와인 한 병을 만들기 위해 생산자들은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한다. 이러한 고민과 선택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이 파생되고 결국 하나의 결과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닌 프랑스인들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색다르게 그리고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프랑스 여행, 와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른다.
By 정희태 가이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