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그앙은 파리생제르맹(PSG) 빼고는 다 별로잖아?" 원론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축구 보는 게 재미없다"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프랑스 리그앙 수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즐거운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서든 아침에 일어나 동네 빵집으로 가시라. 갓 나온 바게트 혹은 크루아상 하나에 생각이 바뀔 것이다.
네이마르, 음바페가 있는 곳, 파리 생 제르망(PSG)
프랑스 축구와 문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당연히 파리로 가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그 연고지 마르세유도 좋지만, 접근성과 대중성에서는 역시 파리와 PSG가 앞선다. 파리는 한 달을 살아도 다 못 볼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고 PSG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다.
파리에서 즐기는 축구 여행
본격적으로 파리 축구 여행을 떠나보자. PSG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최고 인기팀 중 하나가 됐으나 표를 구하기는 쉬운 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PSG 홈경기장 파르크 데 프랭스는 파리 서쪽 외곽에 있다. 파리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서울의 4분의 1)이기 때문에 숙소가 어디라도 경기까지 그리 멀지는 않다. 지하철 9호선 포르트 드 생 클루(Porte de Saint-Cloud)역, 9호선 엑셀망 (Exelmans)역, 10호선 포르트 도퇴이(Porte d'Auteuil) 역에서 걸어가면 된다. 파리를 처음 찾은 여행자라면 9호선을 추천한다.
경기가 없는 날도 충분히 파르크 데 프랭스와 PSG를 즐길 수 있다. 경기장에는 상시 문을 여는 메가스토어(팬샵)도 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이라면 매년 5월, 6월 프랑스 오픈이 열리는 롤랑 가로스를 함께 즐길 수도 있다. 10호선 포르트 도퇴이(Porte d'Auteuil)역에서 내려 롤랑 가로스에 들러 기념품을 사고 조금만 더 내려오면 파르크 데 프랭스다. 역 주변에 있는 세르 도퇴이 정원을 둘러보면 한결 여행이 여유로워질 것이다.
2% 부족한 PSG, 바게트와 크루아상으로
혹시 생길 수 있는 저녁 경기의 허무함을 미리 예방하는 길이 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숙소 밖으로 걸어나가서 빵집을 찾아야 한다. 주변 빵집을 미리 검색해 두면 편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고소한 빵 냄새를 찾아가는 방법도 좋다. 빵 종류야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추천하는 빵은 두 가지다. 바게트와 크루아상.
프랑스의 상징, 바게트
바게트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맛있다. 갓 구운 바게트는 그 어떤 빵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하다. 기계화와 기업화에 타격을 받은 프랑스 제빵사들은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고, 프랑스 정부는 1933년 소위 '바게트 법(빵에 관한 법령)'을 만들었다. 밀가루, 물, 효모, 소금만을 넣어 만들어야 하고, 길이 60~70cm에 무게는 250~300g이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그 빵에 바게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2020 파리 최고의 바게트 맛집
프랑스인들의 바게트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건 바로, 파리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바게트 그랑프리 (Grand Prix de la Baguette)이다. 이 대회에서 1위를 하면 상금 4000유로 (약 500만 원)을 받고 프랑스 대통령 거처인 엘리제 궁에 1년 동안 바게트를 납품할 권리를 갖는다. 2020년 바게트 그랑프리에서는 17구에 있는 메종 줄리앙 레 사뵈르 드 피에르 드무르 (Maison Julien les saveurs de Pierre Demours) 소속 제빵사 테브 사할(Taieb Sahal)이 우승을 차지했다.
겉바속촉의 대명사, 크루아상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을 원하는 이는 크루아상을 집어 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먹을만한 크루아상은 3000원을 훌쩍 넘기지만, 프랑스에서는 1유로면 맛있는 녀석을 고를 수 있다.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모두 노릇하게 구워진 크루아상을 깨무는 기분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크루아상을 먹으면 '아침에 무슨 커피야!'라고 외쳤던 이도 커피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필자는 아침에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하나씩 먹고, 취재하러 가는 길에 크루아상을 하나 더 산다. 동네에 있는 모든 빵집의 크루아상을 먹은 뒤 최고만 가려서 체류가 끝날 때까지 사 먹는 식이다. 다른 도시나 동네로 거처를 옮겨도 이 '의식'은 계속한다. 크루아상은 바게트처럼 따로 상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검색창에 best croissant이라고 쳐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필자가 얻은 정보 중에 하나만 공개한다면, 15구에 있는 라 메종 피샤르 (La Maison Pichard)를 추천하겠다. 1유로에 천국을 맛볼 수 있다.
'빵훈이'가 머물다간 그 곳, 디종
디종은 파리에서 TGV를 타면 1시간 45분 만에 갈 수 있지만, 우리와는 멀다. 파리는 알아도 디종은 모르기 쉽다. 디종이라는 도시 이름은 홀로 쓰이기보다는 겨자와 함께 쓰일 때 더 익숙하다. 또는 2017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디종 FCO에서 뛰었던 축구선수 권창훈 선수로 더 알려져 있을 수도.
디종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겨자를 생산한다.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적인 유산도 많이 가지고 있다. 미식도 파리나 다른 프랑스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와인 산지 코트 드 뉘(Côte de Nuits)도 디종에 있다. 와인을 마시지 못해도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눈을 정화할 수 있다.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디종을 찾는 이들은 국제 디종 와인 축제에 참가할 수도 있다. 특별한 빵도 있다. 빵 데피스 (Pain d'épices)다. 빵 데피스는 디종과 가까운 알자스 지방(독일 접경)에서 유래한 빵이다. 다른 재료(계피, 생강, 허브 등등)도 많이 들어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꿀이다.
석현준과 샴페인이 기다리는 샹파뉴
'축구 여행자' 석현준이 몸담았던 스타드 드 랭스와 올해 초 이적한 FC 트루아 모두 프랑스 샴페인의 고장 샹파뉴 지역의 축구 구단이다. 이곳에서는 축구 경기를 본 뒤에는 무조건 샴페인을 한 잔 들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발포성 와인이라도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샴페인 (샹파뉴)라고 부를 수 없다. 다른 지방에서 만든 발포성 와인은 크레망 (Crémant)이라고 한다. 그만큼 샹파뉴는 고유성을 인정받고 있다. 2015년에는 샹파뉴 지방의 포도밭과 와이너리 그리고 저장고인 카브(Cave)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꼭 뵈브 클리코 (Veuve Cliquot)나 멈(Mumm)과 같은 비싼 샴페인이 아니더라도 한 잔이면 샹파뉴를 진하게 기억할 수 있다.
By 류청 - 포포투 코리아 편집장